1839년 8월 프랑스, ‘카메라’라는 신기한 기계덩어리가 세상에 나왔다. ‘지로-다게레오타입 카메라’를 만든 알폰스 지로는 한대 한대씩 사인을 넣어 ‘정품’임을 알렸다고 한다. 그리고 1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카메라가 줄곧 우리곁을 지키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40여년후인 지난 81년 일본, 소니가 ‘마비카’라는 필름이 없는 카메라를 선보였다. 마그네틱 플로피디스크에 이미지를 기록했다. 하지만 마비카는 아날로그 카메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화질 때문에 양산보급에는 실패했다. 마비카는 세칭 ‘디카(디지털카메라)’의 할아버지뻘이다.
디카는 마비카의 실패를 딛고 10여년간 꾸준히 화질을 높였다. 90년대말 드디어 보급형 디카가 100만화소를 넘어서며 아날로그 도전에 기치를 올렸다. 100만화소가 되면 일반 사진 크기로 확대해도 일반인들은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 후 디카는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해 최근 일본내 연간 출하 대수만 2300만대를 넘었다. 디카가 아날로그를 밀어내는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여기에 엉뚱하게도 휴대폰이 복병으로 등장했다.
지난 8일 도쿄, NTT도코모가 소니에릭슨에서 생산한 ‘SO505i’를 선보였다. SO505i는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폰, 이른바 ‘카메라폰’이다. 사실 카메라폰의 새 모델이 나왔다고 소란을 피울 일은 아니다. 카메라폰은 이미 2년전 가을 일본 J폰이 첫 선을 보인 후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2000만대가 팔린 히트 상품이다.
초점은 화소수다. SO505i가 내장한 카메라는 화소수가 130만이다. 지금까지 카메라폰과 디카 시장을 나눈 이유는 카메라폰은 기껏해야 30만화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감히 디카의 100만∼600만에 대적하지 못하는 ‘폰’일지언정 ‘카메라’는 아니었다. 하지만 130만화소를 갖춘 이상 분명히 카메라다.
이정도 되면 카메라폰이 디카보다 훨씬 비쌀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렇지도 않다. 도코모는 3만엔(약 30만원)선에서 가격을 책정해 다음달부터 판매에 들어간다. 물론 컬러폰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팔리는 130만화소 코니카 KD-100이 20만원 정도다. 카메라폰은 더군다나 올해 3700만대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막강한 잠재력을 갖춘 제품이다. 벌써부터 디카의 시대가 가고 카메라폰이 휴대폰과 카메라 시장을 동시에 장악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디카의 강자인 올림퍼스의 기쿠카와 사장은 “100∼200만화소 카메라시장을 수년내 카메라폰에 빼앗길 수 있다. 하지만 300만화소 이상은 디카가 한 수 위”라고 말하는데서 경계의 목소리가 배어난다. 다음달 130만화소 카메라폰이 나오면 다음은 200만화소다.
알폰스 지로가 한대 한대 정성껏 사인했던 ‘카메라’는 이제 디지털화와 컨버전스의 시대를 맞아 휴대폰 속에 흡수돼 버릴지도 모를 것이란 전망까지 낳고 있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