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스틴의 텍사스대학 기숙사에서 10대의 나이에 컴퓨터를 팔았던 마이클 델(38). 그는 불혹이 안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하이테크업계에서 20년 이상 몸담아 온 인물이다.
세계 PC시장에서 개인용컴퓨터(PC)업체인 휴렛패커드(HP)와 1, 2위를 다투는 델컴퓨터의 창업자인 그는 최근 발표된 올 1분기에서도 델이 HP를 제치고 다시 정상한 차지한 것에 대해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델컴퓨터는 PC분야 성공 이외에도 지난 몇년간 시스코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아성을 뒤흔들며 라우터 및 서버 시장으로 진출하는 등 문어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자체 브랜드의 프린터까지 판매, 프린터 시장 선두주자인 HP의 심기를 다시 한번 건드렸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개인정보단말기(PDA) 판매를 개시하면서 HP·팜·핸드스프링 등에도 도전장을 냈다.
이처럼 델컴퓨터가 끊없는 식욕(?)을 과시하고 있는 가운데 이의 창설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델은 “연륜이 50년, 100년인 회사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우리는 겨우 19세에 불과하지만 매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델의 PC분야 성공은 중간유통상을 거치지 않는 직접 판매와 무재고 경영, 그리고 될 만한 제품의 연구개발에 최소한의 투자를 하는 것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델의 이같은 방식에 대해 많은 산업 애널리스트들은 “가히 혁명적”이라며 추켜세우고 있다.
이 회사의 제품 엔지니어링 본부장인 스티브 로튼은 직원들이 주기판·컴퓨터케이스 등 자재가 든 상자를 푸는 모습을 가리키면서 “델은 특별히 창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미리 주문하지 않은 자재는 공장에 전혀 없다”고 잘라말했다.
무재고 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델은 ‘속도’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이는 델의 직원 다이애나 존슨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작은 간이사무실에서 모니터를 확인한 뒤 재빨리 가장 최근 배당된 일에 착수한다. 그는 3분 만에 델의 ‘옵티플렉스 GX 260’ 데스크톱 컴퓨터를 제작한다. 이 공장에서는 각 생산라인에서 시간당 650대의 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다. 델은 이 오스틴공장의 생산라인이 얼마나 많은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케팅 부사장 팀 매톡스는 “고객의 상세한 요구사항에 대해 거의 광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광적으로’란 표현은 델의 최고경영진이 즐겨쓰는 말이다. 조 마렌지 미국 담당 수석 부사장은 “실행에 광적인 초점을 맞추는 델의 문화가 자랑스럽다”고 자찬했다. 린다 하그로브 세계 기업시스템 마케팅 부사장도 “늦어지는 데 따른 관련 비용이 고객에 전가될 것”이라면서 델의 광적인 고객 초점에 대해 만족해 했다.
이러한 델이 잘 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는 델의 구체적인 경영수치로도 금방 입증된다. 델의 주가는 최근 52주 최고가인 31달러를 기록했다. 또 지난 1월 말 마감된 회계연도에서는 21억달러의 이익을 냈다. 반면 경쟁사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최근 회계연도에 5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냈으며 HP도 지난해 5월 인수한 컴팩과의 실적을 합쳐 9억48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텍사스대학 교수로 전자상거래연구센터 소장을 겸하고 있는 앤드루 윈스턴은 “경쟁업체들이 지배하는 마진이 높은 성숙된 시장을 찾아내는 데 델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시장조사회사 IDC의 애널리스트 프레트는 “델은 저가에 양질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을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델은 기존 시장을 추구하는 반면 개척자적 정신으로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러한 델을 일컫어 ‘비겁자’라고 냉소하고 있다.
실제 델은 기술혁신에 가치를 두고 있는 다른 컴퓨터업체들에 비해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이 매우 미미하다. 예를 들어 HP의 연간 R&D 예산이 약 40억달러에 달하는 반면 델은 1년에 겨우 5억달러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델의 경쟁업체들이 델을 일컫어 ‘협잡꾼’으로 몰아붙이는 이유다.
HP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마이클 윙클러는 “델의 신규시장 진입은 잘 나가던 기존 사업모델에 김이 빠진 것을 방증한다”며 델의 새 사업에 대해 폄하했다. 선의 부사장 샤힌 칸도 “델은 컴퓨터산업 발전의 기피대상”이라면서 “델은 컴퓨터회사가 아니라 재판매업자에 불과하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마이클 델은 경쟁사의 이 같은 비난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그는 사무실 근처의 회의실에 편히 앉아 소년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R&D 투자비율이 높은 회사가 이 업계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델은 어떤 아키텍처가 좋다고 고객들을 설득하는 대신 최선의 가치로 최고 인기의 제품을 고객들에게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응수했다.
<코니박기자 cony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