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릭클린(51)은 예나 지금이나 늘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는 25년 전 이맘 때의 앨드리치 홀 108호 강의실에서 열렸던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강의중에도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숫자 하나만 대입하면 복잡한 방정식이나 계산표를 자동으로 계산하는 마술칠판(magic blackboard)이 있다면 어떨까’하고 상상했었다.
브릭클린은 당장 그해 여름 마사스 빈야드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그 상상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기로 마음먹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동창생인 프로그래머 밥 프랭크스턴(53)과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간다.
이들은 마침내 1979년 초 세계 최초의 전자식 스프레드시트(spreadsheet·회계계산표)인 ‘비지칼크(VisiCalc)’를 개발하게 된다. 이 소프트웨어는 PC를 취미용 장난감에서 업무용 도구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지칼크는 그러나 5년 정도만 사용된 뒤 브릭클린과 프랭크스턴이 비지칼크를 짜기 위해 초기에 고용했던 직원 중 한 명인 미치 카포(51)가 개발한 강력한 로터스(Lotus) 1-2-3 소프트웨어로 대체됐다. 하지만 이 로터스 1-2-3도 지난 90년대 초 다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엑셀 프로그램으로 대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엑셀은 그 모든 환상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지칼크가 도입한 개념의 연장에 불과한 것으로 프로그래머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 브릭클린·프랭크스턴·카포 등 스프레드시트 3인방이 지난 9일(현지시각) 비지칼크의 역사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연설하고 토론했던 장소가 바로 MS의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 캠퍼스내 강당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 토론회의 사회는 엑셀 개발을 감독했던 찰스 시모니 전 MS 부장이 맡았다. 그는 현재 한 신생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마운티뷰 소재 컴퓨터 역사 박물관(http://www.computerhistory.org)이 후원했으며 이 박물관은 이날 토론을 자료보관용으로 녹화하기도 했다.
연설에서 브릭클린과 프랭크스톤은 PC용 단일 소프트웨어로는 가장 혁신적 소프트웨어 중 하나인 스프레드시트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오랫동안 진지한 자세로 설명했다.
브릭클린의 부친은 인쇄업자였으며 브릭클린은 지난 70년대 중반 초창기의 컴퓨터 조판 장비 판매와 관련된 일을 했었다. 그는 구조가 치밀하게 짜인 조판작업을 보고 행과 열로 배열된 이른바 ‘셀(cell)’ 개념을 생각해냈다.
그는 블루컬러 조판공들을 교육시키면서 컴퓨터 조판 소프트웨어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조판의 복잡성을 해결해야 한다고 확신했었다.
프랭크스턴도 브릭클린처럼 일찌기 10대 청소년기에 가정용 컴퓨터를 손수 만들었을 정도로 컴퓨터에 해박했으며 MIT에 입학한 뒤 물리 및 컴퓨터 전공 학생으로서는 드물게 회계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프랭크스턴은 취미로 컴퓨터를 쓰는 이들보다 사무실 근로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할 필요성을 깊이 깨달아 스프레드시트를 개발했다. 그는 “문제해결의 돌파구는 계산표를 격자 모양으로 단순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이 끝난 뒤 비지칼크와 로터스 1-2-3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 무엇이냐는 한 청강생의 질문에 카포는 “하이테크사업의 성패는 기술 및 설계의 탁월함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 사업성공에는 기술력뿐 아니라 마케팅 등 다른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원 다닐 때 입었던 바로 그 칙칙한 면셔츠를 지금까지도 입고 다니는 브릭클린도 “내가 했던 일의 본질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정말 멋지다”며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돈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이안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