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향 경남대 북한대학원 겸임교수 kyooh@yahoo.com
지루하게 계속될 것만 같던 이라크 전쟁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끝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파병문제를 둘러싸고 남한 내부에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지만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현실화 가능성을 일반 국민까지 실감하게 했던 ‘공포체험’이기도 했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가면서 ‘이라크 이후’는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라크 이후’엔 북한, 즉 한반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지난 12일 “미국이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조선 정책을 대담하게 전환할 용의가 있다면 우리도 대화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냈고, 미국이 이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북미간의 대화를 위한 분위기는 급진전해 북중미 3자회담의 합의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북미간의 대화재개로 북핵문제의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한편 3자회담 합의를 둘러싸고 남한 내부는 새로운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남한이 북핵문제 논의를 위한 3자회담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현 정부의 외교적 실패로 규정하고 재협의를 종용하는 한편 대북 송금문제 등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지속돼 온 일방적 퍼주기론의 연장선상에서 현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는 불가피한 양보며 향후 본 회담에서 남한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북핵위기의 해결을 위한 북중미 3자회담에 남한이 배제된 것은 분명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열패감을 안겨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3자회담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 언론에서 흥분하며 주장하듯이 곧 남북한 문제에서 우리의 주도권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남북문제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는 때는 북한을 계속 적대시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끝없이 주판을 튀길 때다. 남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도모하고 북한과 미국 등 주변국을 우리의 구도 속으로 끝없이 설득해갈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북핵위기 논의를 위한 3자회담은 경색되고 단절돼 온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대외적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확대 지속하는 일관된 노력에 기반해 북한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미국과 주변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거듭 확인시키는 것이다. 북한 핵위기는 북한과 주변국가 그리고 미국의 양자간 혹은 다자간 협력을 통한 관계개선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남한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경제협력의 확대와 정치적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곧 한반도의 평화와 북핵위기 해결의 필수조건이다.
신의주 특구 지정과 2002년 7월 발표된 경제관리 개선조치 등 북핵위기 이전 북한이 취한 각종 시책들은 북한의 경제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통일부 발표에 의하면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던 1, 2월에도 남북교역은 꾸준히 확대돼 왔다. 올해 1, 2월 남북교역금액은 8874만9000달러로 작년동기 5613만6000달러 대비 58.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당국간 대화를 줄줄이 거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경제교류협력에는 여전히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라크전의 종결과 북미대화의 재개와 더불어 남북경제협력 및 북한의 외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3자회담의 협의는 북핵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힘든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북한의 기대에 비해 이라크전의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부시 행정부의 매파는 ‘바그다드 효과’를 좀더 오래 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남북교류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시키고 이를 통해 남북한간의 신뢰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관된 의지와 정책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남북한의 교류협력의 확대와 신뢰에 기반해 북한을 국제적 협의의 틀 속에 지속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곧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평화의 정착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