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개정안이 여야간 첨예한 이해대립으로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방송위원회 구성을 놓고 위원수를 9명에서 7명으로 줄여 대통령 추천 몫을 3명에서 1명으로 축소하자는 한나라당 주장과 이에 강력히 반대하는 민주당이 한치의 양보없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 10명이 24일 문광위 개회를 요구, 25일 오후에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방송위원수 축소를 발의한 한나라당(이규택 의원)은 민주당의 반대가 계속될 경우 표결처리까지 강행할 태세다. 이번 방송법 개정안에서 야대여소의 힘을 드러내보일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방송위원 축소 추진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을 부정하고 다수당이 방송위를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 추천 3명은 그대로 유지하고 국회 추천 6명을 3명으로 줄이는 대신 나머지 3명의 경우는 사업부가 추천해 3권 분립을 실현하거나 언론단체가 추천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대통령 추천을 1명으로 줄여도 결국 정부 여당의 몫이 4명, 한나라당이 3명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방송위원수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자기 당의 이해에만 급급해하는 여당과 야당에 다시 한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방송위원수에 매달려 다른 방송법 개정안의 발목을 잡고 있고 방송위 구성이 늦어져 각종 현안과 정책법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방송법 개정에는 방송위원수 조정 외에도 방송정책의 문화부 ‘합의’를 ‘협의’로 바꿔 방송위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과 ‘애니메이션 방송 쿼터제 도입’과 같은 굵직한 사안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 방송의 쿼터제 도입은 산업발전과 함께 캐릭터·팬시·음반·만화 등 부가상품시장의 활성화가 기대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원 축소 논란 때문에 논의 자체가 뒤로 미뤄졌다.
뿐만 아니다. 방송위 구성이 늦어짐으로써 위성방송의 지상파TV방송 재송신 허용, 지상파TV의 방송운용시간 연장 등 현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또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디지털미디어센터(DMC), 데이터방송 등 디지털방송환경에 대비한 새로운 정책과 법안 마련이 시급한데도 이를 다뤄야 할 방송위는 여야의 엇갈린 이해속에 갖혀있는 형국이다.
방송위원의 수를 몇명 줄이고 늘리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이보다는 정치권의 개입을 줄이거나 차단할 수 있도록 방송위원 추천비율을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방송위원의 전문성과 객관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지적은 현재 우리의 방송환경에 비춰볼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앞으로 방송은 통신과 융합(미디어 컨버전스)돼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이 사회의 가치를 바꿔놓을 것이 분명하다. 미디어 컨버전스는 이미 기존의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가 병존하는 가운데 미디어사업의 성격과 내용을 크게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방송은 산업·정책·기술·소비자 모두에게 큰 변화를 가져오는 미디어 컨버전스의 문턱까지 와있는데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볼썽사납다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라도 방송통신융합환경에 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으로 방송위 구성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