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성 선문대 교수 ksnoh@sunmoon.ac.kr
21세기 국가경쟁력은 지식자원의 확보와 창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사회 각 분야에서 지식의 중요성이 증명되고 있다. 이미 기업은 오래 전부터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 체제를 도입해 국제경쟁력 강화에 매진해왔다.
어디 그뿐인가. 문화 분야도 지식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통문화와 해외 문화, 디지털기술 및 멀티미디어 등에 관한 전문지식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시민단체 또한 인터넷과 관련 DB를 통한 전문정보와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민운동의 대변혁을 이룩하고 있다. 이렇듯 경제·사회·문화·예술 등 제분야에서 지식기반의 혁신이 전개되고 있는데 유독 정치만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지난해 16대 대선을 치르면서 국민은 정치권의 완전한 혁신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의를 겸허히 수용해 전문지식과 개혁으로 재무장해야 할 정치권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아직 관행과 비전문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 살기에 급급하다.
의원들의 전문지식과 소신에 의해 이뤄져야 할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이 권력과 서열이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충성도나 나눠먹기식의 상임위 배정은 영업왕을 연구개발실이나 기획실로 인사발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과는 모두 생산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각종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매번 젊은 피 수혈과 세대교체를 통한 개혁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치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해왔다. 14대는 전체 의원의 39.1%, 15대는 45.8%가 초선의원으로 무슨 연대니, 포럼이니를 구성하며 새 정치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정치 행태와 관행은 오뚝이처럼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개혁성 있고 변화에 앞장서는 정치인들의 열정과 의지가 발현될 수 있는 정치시스템과 지식기반의 정치구조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정치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지식정보시대의 정치개혁은 지식기반 정치로부터 나온다. 지식기반 정치란 정보기술 등을 활용해 다양한 정치 관련 지식과 정보를 생성·수집·축적하고 정부·정당·국회·국민 등 정치 당사자의 의사결정과 정치 행위, 정치과정 등에 적절히 활용하는 지식기반의 정치를 말한다. 지식정치는 마치 지식경영을 통해 기업이 경쟁력을 강화하듯 정치선진화를 추구한다. 지식기반의 정치구조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지식기반의 정당이 구현돼야 한다. 정당의 학습조직화, 정치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활용할 수 있는 ‘지식정치시스템(Knowledge Politics System)’의 도입, 의원 및 당직자들의 전문분야 연구모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둘째, 선거제도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지식전문가의 정계 진출과 비전문 정치인의 퇴출이 용이한 선거제도, 공천과정의 민주화와 투명성 확보, 유권자의 참여와 주장이 정치에 반영되는 ‘국민참여정치’의 제도화가 요구된다.
셋째, 지식국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e정부 프로젝트처럼 정치권에서도 정치의 지식화·정보화를 추진하는 ‘e정치추진위원회(가칭)’를 여야와 시민 등이 참여해 만들어야 한다. 또 사이버정당과 돈 안드는 선거문화를 국회에서 먼저 제도적으로 추진해가야 한다.
넷째, 정치인의 지식인화가 요구된다. 의원 스스로의 학습 마인드 확립, 정치학습 프로그램의 상설운영,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상시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지식 네트워크 구축, 직능별 비례대표의 확대 등을 통한 정치인의 전문성 강화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지식 인프라의 구축이 필요하다. 정치 관련 지식과 정보의 패턴별 데이터베이스 구축, 정보 수집 원천에 관한 로드맵 개발, 인터넷 기반의 국회 운영, 국회와 관련 기관과의 정보교류 정례화 등 지식기반의 정치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21세기에는 지식과 정보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어느 때보다 지식기반의 정치 혁신을 갈구하고 있다. 정치권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선진정치 실현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식정치’ 구축에 모두 합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