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웅 LG산전 신사업담당 상무(공학박사) jongwoongc@lgis.com
지난 1988년 미국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소의 마크 와이저(Mark Weiser)가 차세대 컴퓨팅환경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비전을 제시한 이래, 각 국가에서는 이를 전략적인 미래산업으로 삼고 숙명적인 대결에 돌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u코리아’의 기치 아래 정보통신부와 학계가 중심이 돼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며, 산업자원부도 신산업의 모델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유비쿼터스는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에 컴퓨터를 탑재, 어느 곳에서 언제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혁명이라 할 수 있다.
전력산업은 인류가 만든 산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복잡하며 불확실성을 가진 것 중 하나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시대의 환경변화에 늦다. 인터넷이 전체 산업에 보급될 때도 전력산업은 가장 늦게 이에 반응했다. 이미 유비쿼터스 컴퓨팅환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급속히 파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적 문제가 산재돼 있다. 또 상당부분 개념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사생활 침해 등의 숙제도 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비쿼터스는 우리 곁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전력부문은 가장 보수적인 산업이긴 하나 동시에 유비쿼터스 환경에 가장 적합한 산업이다. 전력산업의 고정 인프라야말로 전자와 물리공간을 통합해 물리적인 공간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인프라기 때문이다. 전력은 센서·칩·태그 등을 부착해 상황인식을 정보화하고 언제 어디서든 정보의 필요성을 우리가 스스로 자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다.
전력회사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전력을 생산해 연속성과 안정성을 가지고 수용가로 보내는 일이다. 이러한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전력계통의 신뢰도를 유지시키는 것이 급선무인데, 전력계통은 지역적으로 산재돼 있으며 매우 복잡하다. 최근에는 한전 민영화 등 전력산업구조 개편과 맞물려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전력산업은 개인 정보기기 지향적, 접속의 이동성, 콘텍스트 지향적 개념 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전력산업 인프라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디바이스를 가지고도 각종 전력설비나 기기 등에 탑재된 컴퓨터를 통해 가치있는 실시간 정보 데이터를 인식해야 한다.
몇 가지 적용가능한 사례를 상상해보자. 우선 최근 전력계통에서 보호·감시·미터링·진단 등에 가장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IED(Intelligent Electric Device)’는 유비쿼터스 환경에 가장 접근해 있다. 고주파인식시스템(RF-ID) 같은 기술 및 지능형 기술을 소프트웨어와 결합, 전력분야의 유비쿼터스 디바이스로 가장 먼저 자리매김하게 될 전망이다. 홈네트워킹 분야에서도 가전기기, 에너지 기기, 조명장치, 방범방재, 집안의 PC 등과 어우러져 정보통신분야와 기술간 융합이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진화될 전망이다. 설비 예방진단 등의 분야도 액티브배지, RF-ID, 유닉스 로그인 및 모바일 전화번호 등과 결합돼 사람이 기계의 고장을 언제든지 몸으로 느끼고 자동적으로 시스템을 통해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아직도 전력분야에서 유비쿼터스를 논하면 ‘꿈 같은 얘기 하지 말라’고 면박을 받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독점적이던 전력산업이 이제 경쟁체제로 바뀌면서 세상의 뒷전에서 소수만이 갖고 있던 정보가 이제 세상의 전면에 상품과 정보라는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주변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이라는 단어는 고전적이고 독점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전력이 유비쿼터스를 만났을 때 보다 우리와 친숙한 단어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위해 전력분야 관련 종사자들이 먼저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비즈니스 모델은 전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얼마나 고민하고 누가 먼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지가 바로 사업의 승패다. 이제 전력분야도 새로운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일반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