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드림 키즈’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바로 소니 얘기다.
소니는 3월로 끝난 2002년 회계연도에서 영업이익이 당초 예상됐던 2800억엔(약 2조8000억원)에서 무려 900억엔 줄어든 1854억엔에 그쳤다.
애널리스트들은 실적 하향조정조차 하지 않은 소니를 성토하고 나섰다. 소니 경영진은 “경영관리 능력이 부족해 이런 급격한 실적 악화를 파악 못했다”며 머리를 숙여 투자자들에게 사과했다.
실적 발표 다음날인 4월 25일 금요일, 소니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주말을 지내고 개장한 월요일, 다시 가격제한폭까지 폭락했다. 주가총액에서 9000억엔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일본 언론들은 이에 대해 ‘소니 쇼크’라고 표현했다.
28일 오전 도쿄증시(1부)는 버블경제 붕괴 이후 최저치까지 폭락했고 전체 매도액의 4분의 1이 소니 주식이었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증시 반응에 이상한 부분이 있다. 소니는 2002년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 결산 결과 매출액 7조4736억엔, 당기순익 1155억엔을 각각 기록했다. 당기손익은 전년 대비 7.5배나 늘어난 것이었는 데도 말이다.
굳이 답을 찾자면 디지털 드림 키즈에서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소니는 1946년 2차대전에 패전한 후 잿더미 속에서 ‘소니다운 창조 제품’을 일궈내며 성장했다. 워크맨, MD, 플레이스테이션(PS)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95년 사령탑에 오른 이데이 노부유키 CEO는 디지털 드림 키즈를 내걸었다. ‘소니는 키드의 꿈을 실현시킨다. 그리고 소니 자신도 꿈을 꾸는 키드다’고 설명하면서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키드가 되자고 강조했다.
이데이 CEO는 90년대 후반 이런 기치 아래 매출·순익을 올리며 ‘이데이 신화’란 조어를 만들었다. 분명 성공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90년대 후반 과연 소니에 ‘소니다운 창조’ ‘디지털 드림 키즈’가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DVD리코더, 액정TV, 플라즈마TV, 카메라폰 등 21세기 히트 분야에서 소니가 ‘한 건 했다’는 말은 듣기 힘들다. 특히 AV분야 최강자인 소니에 액정TV· 플라즈마TV 분야의 후발주자란 딱지는 수치에 가깝다.
키즈를 들끓게 하겠다던 ‘디지털’ ‘네트워크’ ‘콘텐츠’도 눈에 띄지 않는다. 2002년 매출에서 전자부문은 여전히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몇 년간 실적을 보면 하드웨어 실적의 요동은 그대로 전체 실적에 반영됐다. 이는 디지털 키즈로의 체질 변화가 무엇을 추구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데이 CEO의 말대로 ‘즐겁고 꿈이 있어야’ 소니다. 도이치증권이 “시장 개척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소니는 더이상 업계 선두가 아니다”고 지적한 말은 소니로서는 아프다.
오는 7일은 소니의 전신인 도쿄츠신코교가 탄생한 날이다. ‘블루레이’ ‘차세대 게임기’ ‘유기EL’ ‘신개념 가전’ 등을 ‘소니다운 창조’로 내세우는 소니가 생일 파티를 끝내고 다시 ‘즐거운 소니’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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