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약소국의 설움

◆디지털산업부·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약소국의 설움 아니겠습니까.”

 미 상무부 실사단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한탄이다. 일주일 이상 불려다니며 이런 저런 자료를 제출하고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뺀 관계자들은 미국의 실사가 너무 과도하며 심지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하이닉스의 D램과 전혀 관계가 없는 차세대 프로젝트를 왜 실사하는지 의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정작 정부나 연구단에서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하이닉스에 지원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만 급급, 저자세로 일관했다. 이런 식이라면 미국이 어떤 자료를 요구하든 우리는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 자명하다. 미국은 이번 실사를 진행하면서 막대한 정보를 얻었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정부가 내주는 차세대 기술·산업화전략 등을 앉아서 브리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도체산업의 신화를 일구며 세계 경제의 한 축을 쥐고 있다. 삼성전자가 일본 경쟁사들을 앞질러 반도체산업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시기적절한 제품개발과 시설투자 덕분이었다고 한다. 세계시장의 조류와 경쟁기업의 정보를 파악해 시장가능성을 앞서 내다보는 정보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규모 면에서는 미국이나 선진국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과감한 연구개발과 인적자원투자로 기술경쟁력을 키워왔다. 이렇게 어렵게 확보한 기술력을 가만히 앉아서 내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 실사단의 국책과제 전반에 대한 조사요구와 우리 정부의 순순한 대응자세는 아이러니하게 마이크론 사태의 악몽을 되씹게 한다. 하이닉스 인수를 내세워 모든 정보를 싹쓸이해간 마이크론이 이를 이용해 덤핑을 제소, 이번 실사까지 초래하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도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주길 기대해본다.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부당한 요구에는 정면대응하는 당당함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