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의 편지](17)청부살인의 징후

 지금까지의 줄거리:JTT 인사과장 요코다 도시오와 후지사와 아키라의 모친간 관계를 밝히려 광역폭력단 야마이치 고베구미의 혼다 에이지는 두 사람이 든 고베역 앞 호텔의 옆방에서 도청장치에 귀를 기울인다.

 

 1973년 9월 8일

 고베역 앞 호텔

 독일제 도청기의 성능은 매우 우수하다. 볼륨과 톤을 잘 맞추니 쌔하고 전류 흐르는 소리가 나기는 하나 옆방의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그동안 잘 있었어?” 요코다의 말이다. 반말이다. 에이지는 요코다라는 젊은 새끼가 오야붕의 부인에게 반말지꺼리를 한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더구나 부인은 요코다보다 훨씬 연상이 아닌가? 쌍놈의 새끼…. 분노에 귀가 멍멍할 정도로 피가 끓어오르고 당장 들어가서 때려 죽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처리해야 할 때다. 다시 냉정을 찾고 듣는다.

 “….” 부인은 역시 아무 말이 없다.

 “사다코상, 이제는 우리도 다정히 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몸을 섞은 것이 벌써 몇번인데.” 이 말에 에이지는 뭔가 몸 안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이 참을 수 없는 광증 같은 것이 느껴진다. 몸을 불불 떨며 일어나서 담배를 피워 물고 듣는다.

 “이젠 제발 관계를 끊어 주세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남편에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후지사와 부인의 애원이다.

 “그렇게는 안될걸…. 그리고 이것이 나를 원하고 있어.” 요코다가 후지사와상에게 다가와 신체의 일부분을 만지며 하는 말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에이지의 손이 무의식 중에 옆구리에 찬 권총으로 간다.

 “자 내가 먼저 씻을게….”

 요코다가 욕실로 들어간 모양이다. 한동안 소리가 없다. 부인은 기척도 없이 서 있음에 틀림없다. 에이지는 옆 방으로 가 부인을 모시고 본부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려서부터 사모하고 좋아하던 부인을 저 개새끼한테 빼앗길 수 없다는 한없이 억울한 마음이 전신을 휩싼다. 야쿠자로서가 아니라 청년으로서의 마음이다. 왜 사태가 저렇게 되었을까? 줄담배를 피며 다음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는데 입안에 침이 마른다.

 수분이 지났을까 인기척이 들리더니 “가서 씻고 오지”라는 말이 들린다.

 “….” 후지사와 부인에게서는 아무런 소리도 안들린다.

 오쿠상 오네가이 이카나이데(부인 부탁이에요 가지 마세요). 에이지는 마치 자신의 어머니가 겁탈당할 것 같은 안타까움으로 욕실로 들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리석다. 다시 인기척이 들린다.

 “누이데(벗어).” 요코다의 말이다. 다소 어조가 거칠어졌다.

 “만지지 마세요.” 요코다가 만지는 것을 거부하는 말이다.

 한동안 소리가 없더니 다시 인기척이 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부인이 욕실로 들어간 모양이다.

 “빠가야로. 지가 뭐라고. 내 몸을 탐하는 주제에.” 요코다의 혼자 소리임에 틀림없다.

 과연 부인은 요코다의 몸을 탐할까? 그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비로소 에이지의 뇌리에 자리잡는다. 이 세상에 성녀란 없다. 이미 밤의 세계를 충분히 본 그에겐 의심없는 진리다. 하긴 오야붕이 남자 구실을 못한다는 말을 언뜻 들은 기억이 난다. 당뇨가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코냑을 좋아해 한때는 하루에 한병 이상씩을 마셔 “오야붕 오줌은 코냑”이라는 농담을 친피라(졸개)들이 몰래 하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여기에 이르니 에이지의 마음이 냉정해진다.

 다시 문소리가 난다. 부인이 욕실에서 나온 모양이다.

 “서 있지 말고 이리와요.” 요코다의 말이 다소 공경스럽다. 가증스러운 새끼. 에이지는 이제 다른 감각에서 침이 말라오는 것을 느낀다. 안타까움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부인이 침대에 눕는 듯 시트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한 은밀한 소리들. 에이지는 창 밖을 내다본다. 아직 9월 초 토요일 이른 오후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깨끗하다. 어릴적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담장이 없는 허술한 집안에 들어섰을 때 부모의 성행위를 언뜻 보고 행길로 나가 쳐다보던 하늘의 색깔이다.

 옆방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여름에 더위 먹은 개의 숨소리가 지속되더니 이윽고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암컷의 소리가 난다. 에이지는 참담하고 당황스럽다. 에이지의 느낌을 더 자극하는 듯이 남녀의 신음소리와 살 부딪히는 소리가 심해진다. 이제는 누가 누구를 범하는 소리가 아니라 화간의 소리다. 에이지는 다시 살기를 느낀다. 다만 살기의 대상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었을 뿐. 그리고 흥분이 된다. 바지의 지퍼를 열고 성기를 꺼낸다. 일어서서 자위를 시작한다. 불량소년이던 고교생 시절 아름다운 후지사와 부인을 생각하며 하던 자위다. 옆방의 남녀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순간에 에이지도 사정을 한다. 부인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이 마치 동정을 잃을 때의 가벼운 허탈감과 같이 느껴진다.

 “아니키와?” (형님은) 하고 묻자 아파트 앞 주차장의 차에서 경계를 하던 부하는 씩 웃으며 위를 가르킨다. 니시구치 다다오가 묵는 집은 일본의 아파트치고는 드문 대형이다. 문을 당기자 소리없이 열린다. 현관을 들어서니 남녀의 성행위 소리가 기승을 부린다. 형님이 또 여자를 불러 한낮의 섹스를 하는 모양이다. 니시구치는 섹스 마니아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많은 섹스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요코다와 후지사와상의 밀회에 대하여 보고를 하려고 오긴 했는데 난처하다. 나가서 기다릴까 방해를 하고 보고를 할까. 니시구치는 성질이 불 같아서 보고를 미루었다간 눈깜짝할 새 없이 주먹이 날라오는 터다. 거실 입구에서 망설이며 침실 쪽에 눈을 준다. 거실에는 침실 쪽으로 거대한 수족관이 있는데 침실이 열려 수족관으로 남녀의 육체가 거대하게 확대되어 보인다. 니시구치의 거대한 엉덩이가 위아래로 상하운동을 하고 그 밑으로 또 다른 세트의 거대한 엉덩이가 쫓아다닌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여자의 엉덩이 움직임과 비명이 전혀 박자가 안맞는다. 가짜로 흥분하고 흐느끼는 척하는 것이다. 어디서 밤의 여자를 하나 차출해 온 모양이다. 여자는 프로로서 남자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키.” (형님) 하고 문 앞으로 다가가 부른다.

 “뭐야 빠가야로”하며 니기구치가 여자의 몸 위에 덮친 상태로 묻는다. 별로 화난 기색이 아니다. 니시구치에겐 섹스가 스포츠와 별 차이가 없으니 조깅 중에 말을 붙인 정도이리라. 전라의 여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으로 에이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니시구치의 몸에 감은 다리는 미동도 않는다.



 니시구치가 에이지의 안건을 눈치챈 듯 여자의 몸에서 내려오고 여자도 여유있게 옷을 입는다.

 “보고해봐.” 니시구치가 옷도 입기 전에 담배를 피워 문다.

 “둘이 랑데부를 했습니다.”

 이 말에 니시구치의 얼굴이 아주 사나워진다. 금방 주먹이라도 날릴 모양이어서 에이지는 조마조마하다.

 “그래 호텔에서 그 요코다라는 새끼와 했다는 거야.”

 둘이서 섹스를 했느냐는 질문이 마치 둘이서 식사라도 했느냐는 투로 들린다.

 “네”하며 에이지는 녹음기를 꺼내 호텔 1215호실의 내용을 틀어준다.

 녹음을 다 듣고 난 니시구치의 얼굴은 흥분과 분노가 뒤섞여 검은 얼굴이 짙은 적색으로 변하고 기름이 번질번질하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연거푸 피우는데 아직 옷을 전혀 입지 않고 있다. 쪼그라든 성기에는 여자의 액체가 맑은 이슬방울처럼 맺혀있다. 탁자 위의 티슈를 집어 닦아주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형님, 어떻게 할까요”하고 묻는다.

 “음….”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 니시구치는 나체인 상태로 베란다로 걸어간다. 에이지보다 두 살 위지만 지방이 전혀 없는 근육질의 몸이 성질과 같이 빡빡하고 잔인한 느낌이 든다.

 “아키라에게 알려야겠지…. 도쿄에 다녀와라.”

 “직접 뵙고 말씀드리라는….”

 “그래.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전화로 하겠냐. 그리고 내 입으로는 말하기 싫다.”

 “하지만….”

 “하라면 해. 이놈아.”

 “네….”

 “그리고 이 일은 누구에게 말해도 안된다. 하늘 아래 오직 네사람이 아는 거야.”

 숫자에 느린 에이지는 손으로 꼽아본다. 아키라에게 말한다면 당사자 두사람을 포함해 다섯이다. 이 마음을 꿰뚫어 본 듯이 니시구치가 내뱉는다.

 “하나는 없어질거야. 너는 아키라를 모른다. 차가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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