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제2기 방송위원회](2)위상 재정립 `발등의 불`

 방송위원회는 2000년 3월 방송법제정과 함께 정식으로 출범했다. 구 방송위와 구 종합유선방송위가 통합한 방송위는 정부로부터 방송정책권을 이관받아 명실상부한 독립기구로 위상을 재정립했다. 당시만해도 방송의 독립을 위한 정부의 용기있는 결단이었다고 평가됐다.

 하지만 방송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방송정책권을 환수하기 위한 정부측의 끊임없는 물밑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 방송이 정권에 휘둘렸던 구 시대로의 회귀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문화부는 방송정책권을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현행 방송법의 태생적인 한계에서 기인한다. 방송정책에 대한 권한을 방송위에 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방송위가 정책을 펼 수 없도록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주파수배정권을 정통부가 쥐고 있으며 방송정책에 관해서는 문화부와 합의토록 규정하고 있어 방송위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축소시켜 놓았다. 여기에다 방송위원선출을 대통령과 국회가 결정하면서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 독립하기가 쉽지 않게 돼 있다.

 ◇방송정책권의 정부 환수 주장=문화부의 방송정책권 환수 주장과 월권은 방송위 출범 이후 수없이 많이 표출됐다. 올초만 해도 방송정책권을 정부로 환수해야 한다는 문화부의 주장은 여러차례 제기됐다. 지난 2월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방송정책권은 문화부가 갖고 방송위는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규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인수위에 보고했다고 밝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강대인 전 방송위원장은 당시 “김 전 장관의 발언이 정부부처로부터 독립된 국가기구로서 정책입안과 행정규제 권한을 가진 방송위의 법적 위상과 권능을 침해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4월초에는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방송정책과 문화적·산업적 측면의 ‘영상콘텐츠 진흥정책’ 분리라는 명목으로 방송영상정책을 문화부가 가져야 한다고 보고해 또한차례 논란이 됐다. 잠잠해지려면 문화부는 방송정책권의 환수를 들고 나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문화부의 주장은 민간 독립기구가 방송정책이라는 중요 사안을 수행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 하에 출발한다. 또 방송정책권을 정부가 행사하는 외국 선진국의 사례와 함께 지금의 우리 정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과거의 독재정권과는 다르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방송위의 독립을 가로막는 걸림돌=방송학자들은 방송위가 민간기구라는 문화부의 주장은 잘못된 논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위는 공무원 신분인 5명의 상임위원과 명예직의 민간인인 비상임위원 4명, 이들의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사무처 직원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방송위는 구성만으로 볼 때는 오히려 정부와 민간이 합쳐진 이상적인 독립 국가기구라는 설명이다.

 다만 여야 정치권이 방송위원들을 추천하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추천과정과 검증 절차가 없다는 한계가 방송위원들의 소신있는 정책 추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또한 방송위의 독립적인 방송정책 수립을 방해하는 방송법 조항도 지적된다.

 방송위 한 관계자는 “방송법 제27조 ‘방송영상진흥정책과 관련된 사항은 문화관광부 장관과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은 합의를 협의로 바꿔야 하고, 방송법 제92조 ‘문화관광부 장관은 방송영상산업의 진흥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은 폐지해 방송산업 정책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결책=방송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송 정책·행정·규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방송위의 위상이 재정립돼야 한다는 것이 방송계의 공통된 요구사항이다. 이는 제1기 방송위의 시행착오를 경험으로 제2기 방송위가 풀어야 할 중요 과제로 떠오른다.

 또한 정치권도 방송계와 여론의 방송위원 선임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문화부 장관과의 ‘합의’를 ‘협의’로 바꾸는 방송법 제27조 개정안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비판에 귀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방송학자는 “방송·통신융합 환경에 대한 대처와 뉴미디어의 발전을 위한 방송위의 정책입안을 위해서는 방송위 산하의 연구기관 설립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며 “이것이 어렵다면 현재 문화부 산하기관인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을 방송위 소관 하에 두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