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를 내세운 미국 정부의 ‘TIA’ 시스템을 둘러싸고 미국 사회전반에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방부 등 국가안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과 의회·시민단체 등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TIA는 2001년 9·11 사태를 경험한 미국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표방하며 테러범 추적에 활용하기 위해 지난해 말 구축에 착수한 정보시스템. 국방부 산하 첨단연구계획국(ARPA)이 테러단체들의 비밀활동을 탐지하기 위해 각종 관련 정보를 뒤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e메일이나 온라인 쇼핑, 전화통화는 물론 은행 및 신용카드 거래, 여권, 비자, 비행기표나 기차표 구매, 렌터카, 취업허가, 진료기록, 잡지구독에 이르는 미국 내 거주자들의 개인정보가 모두 포함된다.
당연히 이 시스템은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인정보를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했다.
비판자들에게 TIA는 한마디로 ‘미국판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인 셈이다.
그러나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을 포괄하는 우리나라의 NEIS와 달리 TIA는 미국민, 나아가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용으로 인한 폐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데이터의 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국방부에 따르면 TIA의 테러 관련 데이터베이스(DB) 규모는 페타(1peta=1000조)바이트급이다. 1페타바이트는 1800만권의 장서를 갖춘 미 의회도서관의 50배로 현재 인터넷상에서 가장 큰 DB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림과 동영상 파일이 포함된 이 데이터를 텍스트로 환산하면 전세계 62억 인구 개인당 40쪽짜리 신상명세서를 모아놓은 것과 맞먹는다.
추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행위를 탐지해 테러범들이 미국에서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을 저지한다는 국방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빅 브라더의 귀환’이라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지적이 타당하게 들리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 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이란에 무기를 판돈으로 니카라과 반군을 지원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장본인인 존 포인덱스터 전 해군중장이 이 시스템 개발을 총지휘해 TIA의 어두운 측면이 한층 더 부각되고 있다.
이같은 목소리를 의식해서인지 국방부는 최근 TIA의 운영을 개선키로 했다고 밝혔다. 범죄와 테러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종합정보인지(TIA:Total Information Awareness)’라는 기존 명칭을 ‘테러정보인식(Terrorism Information Awareness)’로 바꿔 그 취지를 확실히 하기로 했다. 또 합법적으로 획득한 정보만을 분석·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TIA가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계획 및 실행단계에서 철저하게 감독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의회 일각의 반발을 수용한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현실이 국방부의 의지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회에 TIA감시자문위원회를 두기로 한 것과 국방부가 제출한 TIA 세부계획 및 예산에 대한 승인을 의회가 담당키로 한 것 정도가 양측간 타협의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