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식이 힘을 얻을 것인가. KBS가 지상파 DTV 전송방식 재검토에 들어감에 따라 그간 수세였던 유럽식이 전세를 뒤집을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미 DTV가 보급됐고 한·미 관계와 같은 요소까지 감안하면 유럽식 전환이 험난하기만 하나 방송계의 파워가 만만찮고 영향력이 큰 KBS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뜻밖의 사태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DTV산업계 관계자들은 “어떤 방식이 바람직하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나 조기에 결론이 나와야 후유증이 적다”고 지적했다.
◇KBS 재검토의 의미=KBS가 설령 유럽식으로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정부 방침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뜻에 따라 미국식을 지지해온 공영방송 KBS가 재검토한다는 사실 자체가 미치는 영향은 크다. 한동안 잠잠했던 전송방식 논란이 벌썩 재점화됐다.
KBS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전송방식 논란은 종식될 전망이다. 유럽식으로 결론을 내리면 전 방송계로 파급하고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미쳐 정부 방침 철회로 갈 가능성이 생기며, 미국식으로 결론을 내리면 정부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논쟁을 서둘러 종식시킬 수 있다.
안동수 KBS 부사장은 “KBS뿐만 아니라 타 방송사와 정보통신부의 의견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전송방식에 대한 KBS의 입장을 가능하면 이른 시일안에 명백하게 결정하겠다”면서 “투명한 결정을 위해 전문가 집단의 공개토론, DTV방식 성능평가 실험 등도 아울러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 부사장은 백지상태에서 논의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KBS의 선택=KBS가 그냥 미국식을 고수하는 것과 재검토 이후에도 미국식을 고수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재검토 없이 미국식을 그대로 고수하면 지금까지 논쟁의 당사자인 정통부와 MBC의 입장차가 그대로 유지된다. 산업적 측면과 투자 비용을 감안할 때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식을 고수하자는 정통부에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다. KBS가 미국식 지지 입장을 재확인하면 더이상의 논란은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유럽식을 선호하는 KBS의 정연주 사장과 안동수 부사장이 미국식을 고수할 경우 유럽식을 주장해온 방송기술인협회와 언론노조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KBS가 유럽 방식으로 입장을 바꾸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일단 SBS 역시 입장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아 지상파방송 3사 모두 유럽식을 지지하게 돼 유럽식이 힘을 얻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식 고수를 천명한 정통부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어 재검토도 불가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파장과 전망=전송 방식이 유럽식으로 바뀌면 DTV는 물론 IT산업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일게 된다.
당장 DTV 수상기와 수신용 셋톱박스 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 DTV를 새로운 IT성장 동력으로 삼은 새 정부 전략에도 일정상 수정이 불가피하다. 자칫하면 한미간 통상문제로도 번질 수 있다. 정통부는 여러 후유증을 들어 유럽식 불가론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방송계는 KBS의 재검토 자체를 유럽식 선회로 받아들이면서 다시한번 정부를 압박한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김수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은 “전송방식이 마치 미국식으로 정해진 듯 하나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KBS· MBC·언론노조와 연계한 DTV 특별위원회를 발족해 6월부터 본격적인 유럽식 전환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미국식을 따라온 TV제조업계 일각에서 최근 미묘하게나마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눈여겨볼 대목은 청와대에 방송계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는 점이다. KBS가 유럽식으로 결론을 내리면 청와대 안에서도 유럽식 전환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전송방식에 대한 소모적인 논란으로 인해 소비자만 멍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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