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품소재의 이상과 현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일진소재는 얼마 전 산자부의 지원을 받아 선진국 수준인 5미크론(㎛) 두께의 초박막 동박을 개발, 자축연을 열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단계인 양산이었다. 국내시장은 12㎛ 동박만을 원하고 있었고 초박막 동박은 대부분 일본에서만 시장이 형성된데다 수요 또한 자체 충당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 회사는 신규 생산설비를 도입하지 못한 채 ‘양산의 꿈’을 접어야 하는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일진소재만의 얘기가 아니다. 많은 수의 부품·소재업체들이 첨단기술을 개발하거나 개발중이지만 내수시장이 없어서 힘들여 개발한 기술을 사장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내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막대한 돈을 들여 고도의 부품·소재 양산설비를 구축하는 데 무리수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수시장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해외시장에 진출해봤자 문전박대당하기 십상이다. 산업 특성상 부품·소재는 완제품에 채택돼 품질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세트업체의 대응능력 부족으로 신개발품의 신뢰성을 입증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따라서 정부의 부품·소재 육성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세트업체들이 첨단 부품·소재를 활용한 선행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 국내시장을 선진국처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첨단제품을 개발한들 이를 담을 그릇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또 부품·소재업체와 세트업체가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 마쓰시타는 ‘테크노스토리’ 프로젝트를 진행, 개발 초기단계부터 세트업체와 호흡을 맞춰 선행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등 부품·소재 수요를 함께 만들고 있다.

 부품·소재 육성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세트업체의 경쟁력도 높여 해당 시장을 형성하는 정부의 ‘윈윈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정부가 부품·소재 국산화에 정책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은 반갑지만 현장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