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7세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 LCD) 생산 착수 계획을 밝혔다. 세계 TFT LCD업계가 이제 막 5세대 라인을 가동하고 6세대로 이전을 위한 준비를 추진중인 상황에서 이처럼 삼성이 6세대를 건너뛴 7세대로 직행하겠다는 것은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나가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여러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은 우선 6세대 투자계획을 밝힌 LG필립스LCD, 일본의 샤프와 LCD 세대 경쟁을 가속화하여 2∼3년 내에 업계 재편을 촉발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10여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가경쟁력 확보와 안정된 수율이 관건이다. 때문에 6세대나 7세대 모두 기존 5세대 이하보다 생산성이 배이상 높아 결국 시장지배력 확대로 이어져 후발업체의 구조조정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세대경쟁이나 규격표준화에 국내 업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든든함마저 든다.
사실 7세대 TFT LCD 라인은 생산성 측면에선 우수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대형 유리기판을 사용하는 만큼 설비와 공정 난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투자비가 증가하고 수율이 하락하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이 4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은 그만큼 생산에 자신감을 가질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어느 분야든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지만 TFT LCD는 기술변화 속도가 빨라 더욱 그렇다. TFT LCD 수요는 휴대폰·노트북 컴퓨터 등 중소형 중심에서 앞으로 대형 TV 등에 들어가는 중대형 중심으로 급격히 이전될 공산이 크다. 특히 다른 IT제품과 달리 초기 공급단계여서 공급자 중심으로 수요가 이뤄지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끊임없는 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시장을 리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삼성전자의 7세대 라인 도입 결정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후발업체들이 삼성의 의도대로 7세대 투자를 감행하지 않을 경우 생산장비 공급 문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삼성의 결정으로 장비업체들은 6세대와 7세대 라인 장비 개발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후발인 대만업체들이 5세대처럼 삼성을 따라주면 별문제 없지만 6세대에 투자할 경우 삼성은 장비구입 가격이나 운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급팽창하는 LCD TV 시장을 감안하면 TFT LCD는 침체의 늪에 빠진 IT산업을 견인할 신수종 산업임에 틀림없다. 특히 우리나라가 세계 1위 TFT LCD 생산국이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액정은 전량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기술을 자급자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주력산업의 핵심부품은 자체기술로 감당할 수 있어야 비로소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또 간과해선 안될 것이 현재 우리가 앞서가는 분야라고 하지만 언젠가 후발자의 도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번에 기업들은 TFT LCD분야 기술과 인력에 대한 투자는 물론 글로벌 전략을 다시 점검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정부 역시 주력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개발 지원정책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또 국내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