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동북아 중심국` 꿈이 아니다

◆남궁석 국회의원 arira@unitel.co.kr

 

 새정부들어 ‘동북아 중심국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4월 1일 국무회의에서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위원회’ 설치안이 통과됐고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마련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동북아에서 한번도 중심국가의 역할을 해본 경험이 없다. 농경사회 4000년 동안 동북아의 중심국가는 중국이었고, 근대에 들어와 산업사회 150년 동안은 일본이 동북아의 강자 역할을 했다. 일본이 1800년대 중반 이후 동북아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한국의 경우 상대적 고난을 겪은 반면 일본은 서구에서 밀려오는 산업사회의 물결을 빠르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840년 아편전쟁을 통해 산업화로 무장된 서구의 힘에 굴복한 중국은 산업화의 물결에 편승하지 못한 채 서구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로부터 140년이 지나서야 중국은 기지개를 펴고 있다. 1978년 덩 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내세우며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반면 일본은 1858년 서구 5개국과 통상조약 체결, 1868년 명치유신으로 개방의 길을 선택하여 30년 동안 서구의 산업화를 압축해서 받아들임으로써 1890년대 열강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후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10년 한일합방, 1932년 만주국 설립에 이어 1941년 진주만 공격까지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였고, 2차대전 후 다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농경사회에서 문명국가로 추앙받던 한국은 산업사회의 변화의 물결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하여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1960년대 산업사회로 진군을 시작하여 지난 40년 동안 서구의 산업화를 압축해서 받아들임으로써, 1인당 국민소득을 80달러대에서 만달러대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서구열강에 비해 200년, 일본에 비해 100년의 시간차가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는 또 하나의 사회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의 이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물결에 뒤처지면 우리의 21세기는 또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다가오는 지식정보사회를 예견하고 착실한 준비를 해왔다. 지식정보사회의 기반인 정보통신 인프라가 세계 최고의 수준인데, 이는 우리 정부가 1999년 3월 ‘사이버코리아21’ 정책을 수립하고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에 매진하였기에 가능했다. 정부의 과감한 추진력은 1998년 말 1만4000명에 불과하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2002년 10월 현재 1000만명을 돌파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OECD도 2001년 5월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면에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한 바 있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성공에 자극을 받아 미국 하원은 초고속 정보통신망 보급을 위한 ‘광대역보급법’을 입법화했고, 일본은 ‘광통신망을 집에까지(fiber to the home)’라는 5개년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새정부에 들어와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의 이동에 대한 긴박성과 구체적 정책방향이 약화된 감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지식정보화의 물결은 산업사회의 물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선진 각국은 지식정보사회의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 모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구축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인프라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지식정보사회를 열어나가야 한다. 우리가 주춤거리며 사회이동의 물결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하면, 이제까지 쌓아올린 토대는 무너지고 다시 역사의 변방국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식정보사회에서 만큼은 동북아 중심국가의 꿈을 이룰 수 있다. 그 꿈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불가능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역사와 규모에서 중국을 극복할 수 없었다. 산업사회에서는 일본과 100년이라는 시간차를 극복할 수 없었고, 우리는 일본을 경유하여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을 능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가오는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동북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과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의 주도권만은 다른 나라에 양보할 수 없다. 사회이동의 물결을 정확히 예견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면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의 꿈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