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과유불급`

 정통부의 PC 백신설치 의무방안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아직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담당자는 이미 백지화를 기정사실로 밝힌다. 지난 3월 28일 정통부 장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이 정책이 나왔으니 두달만에 폐기된 셈이다. 근시안적 정책 수립의 답습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법도 하다.

 사실 백신 설치 의무화는 PC업체와 백신업체 모두 반기지 않았다. 백신업체에서는 가격 정상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고 PC업체는 생산비용이 높아진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이 과정에서 정통부는 백신업체와 PC업체의 관계자를 모아 여러차례 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업체 관계자는 “정통부가 초기에는 ‘올해 입법화, 내년 시행’이라는 입장이 강경했다”며 “담당 공무원은 ‘청와대 보고까지 올라갔는데 시행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백신 설치 의무화를 시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격인데 정통부가 “가격은 업체끼리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거듭된 회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인터넷 대란을 겪은 상황에서 무언가 가시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백신 설치 의무화라는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 때문이다.

 관련업체들과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정통부 측은 전문가와 협의를 거쳤다고 하지만 백신업체는 정통부와 이 문제로 의견을 나눈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간에 ISP를 대상으로 온라인 백신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 역시 간단하지 않았다.

 결국 단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으려는 정부의 의도는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실효성을 내지 못하게 된 셈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를 되새기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이 정책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되지 않고 이쯤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정보사회부·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