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PBS제도 폐지해야

 정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의 전면 재검토에 나선 것은 정책의 가닥을 제대로 잡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인건비의 상당 부분을 외부 과제로 충당해야 하는 PBS제도가 도입된 이후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책임급 연구원들이 프로젝트 수주에 매달려야 하는 등 득보다는 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안정적인 연구분위기를 해치던 PBS 제도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전면 재검토한 후 폐지 또는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PBS 제도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연구원들의 인건비 및 연구비의 일부를 자체 조달토록 하는 PBS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부출연연구기관간 경쟁이 유발되면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연구개발의 효율성이 제고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체 출연연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대다수 연구원들이 중장기적인 연구보다는 단기성과 위주의 프로젝트 수주에 치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개발의 왜곡현상은 출연연 설립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그동안 과학기술계가 PBS제도의 폐지 또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출연연에 투입되는 우리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이다. 기획예산처를 통해 출연연 19개 기관에 직접 지원되는 예산은 평균 30∼40% 수준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출연연 운영에 필요한 나머지 60∼70%를 연구원들이 자체 조달해야 한다는 얘기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해야할 책임 연구원들이 본연의 업무인 연구개발을 뒷전으로 미루고, 마치 장돌뱅이와 같이 연구과제 수주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어도 3개 또는 4개의 과제를 맡지 않으면 연초에 맺었던 연봉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연구개발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과제 수주에 경쟁적으로 나서다보면 연구원 1명이 3∼5건의 연구과제를 수행할 때도 있을 정도라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출연연의 의무라고 할 수 있는 산업발전에 꼭 필요한 중장기 기초연구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참여정부 출범전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모 교수가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연합회가 주최한 ‘출연연 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PBS제도에서는 모든 출연연이 연구비 확보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기관의 핵심역량을 신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없다고 지적할 정도다.

 우리가 PBS제도 전면 개편 내지는 철폐를 언급한 과기부 발표를 환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BS제도가 이대로 유지될 경우 과학입국은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출연연이 기초연구에 매진하는 등 본래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PBS를 폐지하거나 PBS에 의한 비용부담을 50% 이하로 낮춰야 한다. 그래야만 출연연 연구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강조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결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