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보기술(IT) 등 하이테크 분야 불황의 최대 피해자로 해외 이민자들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이들에게 적용했던 비자발급 요건이 대폭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는 9월부터 프로그래머 등 해외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발급했던 ‘H-1B’ 비자 한도(쿼터)를 대폭 축소하는 데 이어 미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 직원들에게 발급해주던 ‘L-1’ 비자도 앞으로 더욱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베이지역(샌프란시스코만 주변의 실리콘밸리)을 비롯한 여러 곳의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개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도 업체들은 최근 미국 L-1 비자 축소를 주장하는 노동 운동가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L-1 비자는 외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발급해주는 임시 취업비자 제도다. 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위프로테크놀로지, 인포시스테크놀로지, 타타컨설턴시서비스 등 외주 용역업체들은 L-1 비자의 사용을 확대해 인도에서 프로그래머 등 전문 기술자들을 데려와 미국 내 자사 고객 회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베이지역에 있는 이들 업체의 대표적인 고객회사는 휴렛패패커드(HP)를 비롯해 시스코시스템스, 비자인터내셔널, 셰브론텍사코,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다국적 기업들이다. 최근 실업률 증가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의 일부 하이테크 근로자들은 L-1 비자가 이전의 H-1B 비자처럼 불공정한 고용 경쟁을 야기하면서 미국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근로자들은 L-1 비자가 남용 금지조항이나 H-1B가 갖고 있는 연간 할당량(쿼터제) 등이 없어 H-1B보다 L-1을 더 싫어하고 있는 처지다. 플로리다주 한 하원의원은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주 L-1 비자 소지자의 외부 프로젝트 투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 수천명을 고용하고 있는 외주 용역업체들은 이 비자의 이용이 합법적이고 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L-1 비자 이용 현황을 감추지 않는다. 미 증시에 상장돼 있는 위프로와 인포시스는 실적 보고서 제출시 L-1 비자와 H-1B 비자 이용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미국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 전문피고용인사업부나 시애틀의 하이테크노동조합인 워시테크 등 미 노동자단체들은 외주업체들이 H-1B 비자에 첨부된 최소 근로자 보호 의무조항을 피하기 위해 L-1 비자를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H-1B에는 적용되지만 L-1에는 적용되지 않는 제한에는 비자 발급건수에 대한 연간 할당건수와 비자 신청자가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갖춰야 한다는 요건 등이 있다. 또 H-1B 비자 신청자들은 미국 근로자들 훈련에 100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반면 L-1 비자 신청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한편 H-1B 비자 한도는 이번 가을(9월 말)까지 의회가 개입하지 않는 한 현재의 19만5000명에서 6만5000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근로자단체들은 현재 이 한도를 낮추기 위해 업계 단체들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채비를 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L-1 비자가 H-1B 비자 한도를 무의미하게 만들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미 전기전자공학회(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USA) 노동정책 문제 담당자 론 히라 컬럼비아대학 연구원은 “H-1B 비자를 받기가 더 어려워질 경우 기업들은 상황에 적응해 L-1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H-1B 축소와 함께 L-1 비자 발급을 둘러싼 논쟁이 올 하반기 미국 국회 및 하이테크 업계를 달구는 최대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관련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코니박기자 cony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