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 ygson@kado.or.kr
‘사이버범죄가 폭증하고 있다’는 경고는 각종 통계자료나 신문지상의 발표를 확인하기 이전에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실감하는 사실이다. 뉴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현실 생활의 사건이나 범죄와는 달리 가상사회에서는 컴퓨터 바이러스 감염, 스팸메일, 도를 지나친 무례함 등 수시로 범법행위나 그 단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컴퓨터 바이러스나 스팸메일 등으로 곤욕을 치른 경험이 없는 컴퓨터 이용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이버범죄는 73년 10월에 발생했다. 서울 반포지구의 AID차관 아파트 3785가구분의 입주자를 컴퓨터로 추첨할 때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원래의 프로그램 외에 별도로 부정 천공한 펀치카드 28장을 카드리더에 부정 삽입하여 당첨자를 조작한 사건이 효시로 기억되고 있다. 그 이후 사이버범죄는 발생건수가 꾸준히 늘어나기는 했으나 증가수치나 사회적 영향력 면에서 미미하여 세인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6만여건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사이버범죄는 지난 2000년 2444건에서 2001년들어 3만2289건으로 폭증하고 2002년 6만68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해킹이나 바이러스 유포 등과 같은 사이버테러형의 경우 1만4159건인 데 비해 전자상거래 사기, 위법사이트,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 등과 같은 일반 사이버범죄는 이보다 3배나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이버테러형과는 달리 개인정보 침해나 명예훼손 등 일반 사이버범죄는 피해당사자의 신고가 없이는 대부분 범죄로 집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발생건수는 훨씬 더 규모가 클 것이다.
사이버범죄는 자동차를 급가속하면 대량으로 발생하는 매연처럼 정보화를 정책적 드라이브로 가속추진한 결과의 부산물이다. W F 오그번이 말한 문화지체(cultural lag) 즉, 물질 또는 기술문화는 급속히 발전하는데 이에 대한 비물질문화, 이른바 예의나 질서의식 또는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현상에서 사이버범죄의 급증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정보화역기능과 사이버범죄에 대해 더욱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깨끗하고 건전한 사이버공간을 만들기 위해 범국민 참여 캠페인 ‘e클린코리아(e-Clean Korea)’ 선포식 및 가두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의식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장치, 사회구성원의 의식변화를 뒷받침하는 것은 정보사회에 맞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정신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한다. 고귀한 신분이란 높은 지위를 말하며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 속하는 엘리트를 의미한다.
산업사회에서의 지도층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소수에 불과했으며 이들이 만드는 도덕적 행위가 사회의 지표로서 일반 국민을 도덕체계 속으로 유인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반면에 정보사회에서는 네트워크의 긴밀함과 파급력으로 인해 의도만 한다면 누구나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되며 따라서 누구나 노블리스다. 현실공간에서의 수백명의 시위대보다 알려지지도 않았던 1인의 핵티비스트(hactivist)가 인터넷에서 주도한 시위가 엄청난 힘을 발휘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보사회가 더욱 화합하는 사회, 인간이 더욱 존중되는 사회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소수의 도덕성보다 구성원 전체의 도덕성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옵트인 방식의 도입에 대해 전자상거래시장의 위축 등을 들어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자유’라는 인터넷의 고유성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e클린코리아 캠페인의 효과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제도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이전에 정보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생각할 때다. 불법 스팸메일의 범람이나 익명성의 그늘에서 이뤄지는 범죄행위들 또한 도덕적 의무를 자각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