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철 기자의 IT@JAPAN]손정의, 아름다운 도박

 한때 ‘인터넷의 지배자’로 불리던 손정의. 그는 “10∼15년 내 MS를 넘어 세계 1위가 될 것”(99년 10월 문예춘추 인터뷰)이라고 말했다. 이젠 누구도 그가 MS를 능가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2003년 3월로 끝난 회계연도에서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는 최종적자 999억엔(약 1조원)을 기록했다. 미국 포브스는 “최근 발표한 세계 최대 갑부 순위에서 2000년 8위였던 손정의가 이제는 386위로 재산이 700억달러 이상 줄어든 사상 최대 자산 감소자”라며 비아냥댔다. 또 “솔직히 지난(2002년) 5월까지 창업 이래 가장 힘들었다”(2002년 12월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고 술회한 그의 모습은 인터넷 버블붕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 손정의가 버블 이후인 지금 오히려 당당하다. 그는 “지금까지의 기업투자, 자금조달 등은 ADSL 비즈니스를 위한 준비였다”고 주장하며 “(주가가 상장 이래 최저 수준이지만) 이는 꿈이 현실 숫자로 바뀐 것일 뿐 지금 오히려 가장 확신에 차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소프트뱅크가 2월 말 기준으로 ADSL 218만명, 인터넷전화 180만명 가입자를 확보한 분야별 1위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NTT라는 공룡이 지배하는 통신시장에서 1위에 오른 것은 ‘신화’다.

 재일한국인 3세 손정의에 대한 일본 언론의 눈은 싸늘하다. 소프트뱅크의 위험성을 짚어내며 ‘최대 도박’(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고 일컫는다.

 첫 위험신호는 NTT가 ADSL시장 탈환에 나선 점이다. NTT는 자존심을 걸고 가격 인하와 무료 캠페인으로 맞불을 놓아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하나는 ADSL의 다음 기술인 광통신망(FTTH)의 급격한 대두다. NTT, 전력계 업체들이 앞다퉈 FTTH 경쟁에 나서며 월이용료를 5000엔대로 인하, ADSL(약 3700엔)에 근접했다. 소프트뱅크는 올들어 ADSL 이용자를 유치하면서 한사람당 무려 3만7000엔씩 뿌리고 있다. 이 돈을 걷어들이기도 전에 FTTH로 이동이 시작되면 설 땅이 없다.

 손정의는 400만명 가입자를 유치해 ADSL시장 독주체제를 갖추고 FTTH 서비스와도 경쟁할 생각이다. 여기엔 ‘돈’이 든다. 소프트뱅크의 현금흐름은 현재 680억엔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좋지 않다. 게다가 2005년까지 매년 400억∼500억엔씩 반환해야 할 회사채가 있다. 투자등급도 낮게 매겨져 신규 발행을 통해 반환분을 막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소프트뱅크는 718억엔어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금 유동성 위기를 막기엔 부족하다. 그나마 야후 주식을 제외하곤 현금화가 쉽지 않다. 손정의는 올초 아오조라은행 보유 주식을 매각, 1000억엔을 확보하며 한숨을 돌렸다. 유동성 위기는 일단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그러나 결국 ADSL분야에서 영업흑자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 목을 죌 것이다. 자칫 하나라도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다.

 그러나 일본 전문가들조차 “그가 없었으면 올 상반기 브로드밴드 가입자 1000만명 돌파도 없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또 ‘독점 NTT 불패신화’를 깨고 통신시장 활성화에 불을 붙인 것도 손정의다. 그래서 그의 도박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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