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학정책 목표에 맞는 개혁을

 과학기술추진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 움직임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감사원이 최근 감사결과를 토대로 업무가 중복되거나 유사한 성격의 연구회를 통합하거나 연구기관의 자유로운 신설·축소·해산·인력이동 방안을 마련하라고 국무조정실에 권고한데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연구회 통폐합을 골자로한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과학기술체제 개혁이 출연연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요즘 출연연이 술렁이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러한 개혁 움직임은 물론 출연연의 새로운 방향 설정과 도약의 기반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일일 수 있다. 개혁안 중에는 PBS제도 개선, 기관 고유사업비 확대 등 긍정적인 사안도 있으나 무게중심은 연구회와 출연연에 대한 조직통폐합 및 인원축소에 있는 듯하다. 물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개혁주체들의 과학기술계 전반에 대한 시야의 폭이 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통폐합과 인원축소로 연구효율과 생산성이 높아졌다하더라도 이것이 현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2 과학기술입국 달성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이번만이라도 단순한 경제논리만 따져 효율증대에 초점을 두기보다 국가과학의 백년대계를 세우고 여기에 맞추어 개혁해 주기를 바란다. 특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히 조직을 개편하고 인원을 줄이기보다 지금까지 비효율적으로 운영돼온 연구개발체제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통폐합의 핵심으로 부상한 연구회 체제가 출범할 때 목적은 관계부처로부터 출연연을 독립시켜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민간연구기관과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연구회 운영실태를 보면 기능과 권한이 한정돼 본래의 의도와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연구회에 예산권도 없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만큼 물리적인 연구회 통폐합으로 수를 줄이는 것보다 현재의 체제가 제기능할 수 있도록 권한을 살려주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개혁에 연구원들이 지쳐있음을 알아야 한다. 연구회와 출연연의 기능조정이 회복세를 보이던 출연연 연구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경제 현실에서 연구개발 의욕마저 없어진다면 재도약의 희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가과학기술 활성화에도 선후가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우리 연구원의 근무 환경을 대변해주듯 인재가 모일 만큼의 따뜻한 연구환경이 우선 필요한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가운데 어떠한 연구개발체제가 가동되더라도 창조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는 평가다. 연구성과에 대한 엄중한 평가가 제대로 될 때 과학기술의 생산성은 나타난다. 연구성과의 책임소재에 따라 연구투자를 집중할 수 있고 또 과감히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소재가 명확해진다면 연구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체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정부가 굳이 개혁의 칼을 빼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과학기술추진체계 개혁의 올바른 수순이다.

 지금 과학기술계에 필요한 것은 자율성이다. 실제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의 80∼90%는 체제에 관심이 없다. 연구비만 구걸하지 않게 해주고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