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 최고 자문기관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보도다.
청와대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을 종전 민간부문 출신에서 대통령을, 사무처장도 청와대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맡고 정부 위원에 장관을 포함시키며 민간 위원도 30인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같은 안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정부와 민간을 합친 기구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자문회의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참여정부의 12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원활하게 수행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지난 91년 상설기구로 발족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 기본정책을 발굴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하며 제도개선 등을 주요 활동으로 삼아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으나 한편으론 활동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이 기구를 활성화해 제역할을 다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서 뭐라 할 것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의 과학기술은 발전속도가 빠르고 또 융합됨으로써 그러한 추세에 맞는 기구와 역할은 필요한 일이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이나 기술, 산업 등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펴는 것은 앞으로도 더욱 절실할 것이다. 더욱이 기구의 수장을 대통령이 맡는다면 무게가 실리고 추진력도 강화돼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이번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는 찬성이지만 그 방법에는 보완해야 할 점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먼저 과학기술자문회의는 다양한 발전방안을 정부, 특히 대통령에게 건의하기 위한 민간부문의 전문가로 구성된 기구로서 독립된 위치에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그런데 정부가 그 조직에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정부 요인, 장관 등을 포함시키는 것은 사실상 그러한 장점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는 민간으로 구성된 자문기관의 존속 필요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보완을 해주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폐지하거나 명칭을 바꾸어 자문이라는 말을 기구에서 빼야 할 것이다.
현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통령과 장관, 또 민간부문의 전문가가 한데 섞여서는 자문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려우며 조직도 활성화되기 쉽지 않다고 본다. 자문기관으로부터 자문을 받아야 할 대통령이 자문기관의 장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사무처장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맡고 특히 정책 집행기관인 행정부의 수장인 과학기술부 장관이나 산업자원부 장관, 정보통신부 장관이 자문위원회에 속한다면 민간 위원들이 독립된 위치에서 제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도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돼 대통령에게 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또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관계장관으로 구성된 국가과학기술회의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연방의 연구개발 투자와 과학·우주 정책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민간 중심의 자문기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장이 돼서 투자나 조정 기관으로 만들 것인지 그 성격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