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소비가치간 경쟁

◆오창호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compino@hanshin.ac.kr

 

 세상으로의 통로이자 자기표현의 상징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휴대폰을 튜닝하고 벨소리나 아바타로 꾸미기 위한 소비 때문에 학교앞 상권이 타격을 입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휴대폰 사용 및 PS2게임기 소프트웨어 구입에 지출되는 비용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도심주변부 테마파크와 영화관·박물관이 부진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소비는 이제 특정욕구를 얼마나 잘 충족시키는가 하는 상표간 경쟁보다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한가 혹은 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욕구가 충족돼야 하는가 하는 소비가치간 경쟁이 중요해지고 있다. ‘좋은 음악을 거실에서 분위기 있게 듣는 것’의 가치가 ‘보다 편하게 개인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듣는 것’ 나아가서는 ‘즐거운 만화·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의 가치에 눌린 결과, 거실형 전통적 스테레오 오디오 시장은 거의 사라지고 휴대형 오디오 및 영상 중심의 홈시어터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주문형 동영상서비스 시장의 문이 열리기 위해서는 이 서비스가 기존의 다른 충족수단, 즉 비디오 대여나 학원·지상파콘텐츠들보다 우월한 가치제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소비자들이 집안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언제든지 즐기고 싶다는 욕구가 다른 어떤 욕구에 비해 더 우선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 혹은 나 자신의 자아실현이나 자기계발이 무엇보다도 소중할 때 그리고 그것이 집안에서 편리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절실히 요구될 때 주문형 동영상서비스로의 소비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소비가치간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비가치의 트렌드에 대해 보다 주목해야 한다. 큰 물결이 오지 않으면 작은 물결도 없다. 소비자들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통찰해보자. 점차 거대화되는 사회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이나 소외감, 빠른 속도에 대한 거부감이 개인적인 관계형성에 집착하고 ‘느림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큰 물결일 수 있다. 최근 소비가치와 욕구를 밝히기 위해 정성적 조사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신상품 시장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감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신상품에 대해 흔히 이루어지는 시장가능성 조사나 수요예측에서 간과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소비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다. 해당 제품·서비스가 시장에 나왔을 때 어떤 욕구충족을 둘러싸고 누구와 경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검토가 부족하다 보니 시장수요의 진실에 접근하는 데 종종 실패하곤 하는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캐즘이론에서도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혁신으로서의 신상품을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경제성장률이 안정화된 성숙경제에 진입하게 되면 더 이상 소득증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장창출은 쉽지 않게 된다. 결국 새로운 상품은 기존 시장에서의 희생양을 찾아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희생양이 일반카메라-디지털카메라 같이 유사 제품범주 내에서 찾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휴대폰-유원지에서와 같이 전혀 다른 범주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우리 제품이 새 옷을 사는 것을 미루고 새 차를 사는 것을 미룰 수 있을 만큼 강력한가. 우리 서비스는 어떤 다른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한정된 소비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툼에서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제품 그 자체가 아니라 제품이 제공하는 혜택·해결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마케팅 근시안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애써서 확보한 시장일지라도 소비가치의 변화로 인해 혹은 가치충족수단의 변화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더 높은 수준에서의 경쟁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제 기업은 소비가치 설계와 제언을 행하면서 적극적인 가치전도자가 돼야 한다. 특히 시장리더일수록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려는 다툼보다는 가치변화에 의해 시장이 사라지지 않도록 방어하고 시장을 지탱하는 가치를 큰 물결로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사회에 어떤 가치관을 강화시키고 어떤 욕구·트렌드를 심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전략의 우선순위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