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그 모습을 따라 물속에 빠져버렸다는 ‘나르시스’의 신화가 21세기의 사이버공간에서 부활했다. 아바타(avartar)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자아(self), 아니 자기애(自己愛)적 심리를 이용해 사이버공간에서 디지털이미지 제품을 파는 비즈니스가 생겨난 것이다.
현실의 ‘바비 인형’ 놀이가 사이버공간에서 아바타로 진화된 것이라면, 수많은 아바타들이 모인 곳이 온라인게임 세계다. 온라인게임은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동시에 접속해 자신의 캐릭터(아바타)로 사냥과 전투 등의 다양한 놀이활동을 하는 것이다.
현실에 있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하나의 사회다. 초창기의 온라인게임에서는 단순한 사냥과 간헐적인 전투만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별의별 인간이 모이게 되자 하나의 사회처럼 온갖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각각의 캐릭터는 마치 게임세계를 자신의 인생 드라마의 일부로 삼고, 이들을 위한 경제시스템도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사이버세상의 인생이 만들어지면서, 이곳에서 새로운 부(富)와 사회적 신분(지위)을 창출하려는 캐릭터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부의 원천은 바로 아이템이었다.
사실 ‘아이템’이라는 것은 단순한 디지털 이미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이 디지털 이미지를 현실속의 어떤 물건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온라인게임 세계에서 아이템이 캐릭터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다보니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대상이 됐다. 물론 게임에서 열심히 사냥이나 전쟁을 잘해 이것을 획득할 수도 있다. 하나의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적어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1주일 이상을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인간은 다른 더 쉬운 방법을 찾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아이템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이다. 디지털세계에서 디지털이미지가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는 순간이다.
온라인게임 세계에서 특정 ‘아이템’이 게임을 즐기는 데 중요하면 할수록, 이런 욕구충족의 동기는 더욱 강해진다. 그러다보니 어떤 아이템은 가격이 수백만원을 호가하게 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그 값어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온라인게임 세계에서 더 잘 살기 위해, 남보다 더 좋고 더 강한 아이템을 얻으려는 욕심이 그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아이템을 현금과 교환하는 것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아직도 ‘계몽시대’의 사고수준이다. 심지어 온라인게임을 만든 개발사의 경우에도 단지 약관을 통해 캐릭터나 아니템을 현금으로 거래할 수 없다고 밝히거나, 현금거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게임사는 책임이 없다는 것만 공지할 뿐이다.
이렇다보니 마치 밀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의 미국사회처럼 이것과 관련된 온갖 범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템’과 관련된 범죄의 대표적인 행위가 ‘타인 계정의 도용’ ‘사기’ ‘폭력사건’들이다. 이같은 범죄가 사이버공간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 현실세계는 디지털이미지 제품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현재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사이트가 200여개이고, 연간 거래규모가 5000억원을 넘는다. 이용자도 수백만명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템의 가치가 무엇이며,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현실세계의 판단은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뒤떨어진 현실세계가 이것을 어떻게 보든, 사이버세상에 경제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아바타와 아이템은 디지털이미지가 훌륭한 가치를 가진 제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디지털 산업혁명과 디지털 자본주의의 정체를 보여주는 시제품이다. 21세기 비즈니스 대박 신화는 이런 디지털이미지 제품을 기반으로,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