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회의에서 한 대학교수가 할리우드 한 편의 영화 수익이 국내 모 자동차 회사의 일년 수출 이익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콘텐츠산업의 육성을 주장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물론 수치적인 이익의 관점에서는 이 교수의 주장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익의 가치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직관적인 주장이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아울러 이 주장을 펀드매니저가 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국가의 산업전략을 기획하는 회의에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은 제조 중소기업의 한 경영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 이익의 가치 측면이란 무엇인가.
자동차 산업은 그 이익이 자동차 회사만의 것이 아니라 생산에 관련된 수많은 부품업체와 그 부품업체에 종사하는 수많은 종업원들과 공유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매출액 대비 이익이 영화산업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산업의 수익성이 낮은 것이 아니라 그 수익이 생산의 가치사슬에서 여러 단계로 분배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한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가 대히트를 기록했다고 하자. 그 부의 분배가 어디로 갈 것인가. 영화제작에 따른 원가를 충당한 이후의 부가가치는 100만 관객일 때나 200만 관객일 때나 그 수혜자는 같을 수밖에 없다. 결국 모 감독과 제작자 등 관련자들이 100억을 버느냐 200억을 버느냐의 차이만이 있는 부의 집중화 현상이 발생하지, 그 이상의 가치사슬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발전의 공헌도 측면은 이익의 증가폭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렇다면 필자가 지금 굳이 과거의 일을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우리 나라에서 매출액 대비 이익이 많은 기업이 좋은 기업이며 우량기업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형성되어 있고 이런 인식은 문화 및 서비스 관련 사업의 선호로 연결되고 곧 제조회사의 자금난과 인력난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 중소기업에서 기술자를 구하는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10여년 전부터 있어 왔던 문제이고 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두드러진 이유는 IMF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본 집단이 이공계였으며,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국가로부터 마련되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84학번인 필자의 대학시절만 해도 공과대학의 인기는 상당했다. 이 이유는 기술자들에 대한 처우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고 사회 분위기도 돈보다는 명예, 사회적 공헌을 더 중시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배금주의 사상에 물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 가장 고귀한 것처럼 잘못 인식돼 있고 이러한 생각들이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출주도형의 제조업 육성 정책과 사회적인 인식전환을 위한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현재 한국 DVR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DVR는 디지털영상저장장치를 일컷는 말로 보안 카메라의 영상을 기존에는 VTR에 저장하였으나 이를 디지털로 처리하여 저장하는 제품이다. 이 분야는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보다도 훨씬 앞선 성능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DVR 회사들은 60% 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수출주도형 기업들이다. 이 분야는 98년도까지만 해도 미국과 일본의 회사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으나 99년부터 우리나라의 회사들이 주도권을 잡아 오늘의 성과를 이룩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부와 언론의 폭넓은 지지가 있었고, DVR업계는 이를 통해 다른 업계에 비해서 유능한 인재를 많이 확보해 제품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처럼 정부와 언론이 근시안적이며 수치적인 이익의 잣대로 기업을 평가하지 말고 그 기업이 미래에 얼마나 국가 발전에 공헌할 것인가를 고려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알린다면 제조 중소기업의 근간은 튼튼해질 것이며 나아가 산업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임병진 성진씨앤씨 대표 ceo@sjc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