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예상대로 하이닉스반도체의 대미 D램 수출에 대해 산업피해 최종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는 앞으로 5년간 미국에 직접 수출하는 물량에 대해 44.29%의 상계관세를 추가로 물게 됐다. 이 정도의 고율관세라면 사실상 대미 직접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측은 우회수출 등 이미 세워놓은 대비책을 발동할 경우 단기적으로 피해액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결정이 다음달 하순 상계관세 최종판정을 앞두고 있는 유럽연합(EU)과 비슷한 관세 부과를 고려중인 대만 등에 부정적 도미노 현상을 가져올 수 있고 대형 거래선이 이탈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하이닉스에 치명타를 주고 장기적인 수출경쟁력까지 약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대표적 경쟁품목인 반도체 전반에 타격을 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고 하지만 하이닉스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리한 판정이 내려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ITC 판정 배경이 2∼3주 뒤에 나오겠지만 그간 상무부 판정 과정이나 ITC의 최종 판정을 살펴보면 우리 정부측의 설명을 일축한 채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이크론반도체의 경쟁사 죽이기와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자국기업 감싸기가 새삼 국제통상 환경의 비정함을 생각하게 한다.
마이크론은 한때 하이닉스 인수의 우선협상자로서 채권단의 자금지원을 요구하다 여의치 않자 협상을 깨고 느닷없이 정부 보조라며 제소를 했다는 점에서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동조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정당하다고 판정한 채권단의 자금지원을 정부 보조금으로 본 것도 그렇다. 경제가 괜찮으면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관대한 편이나 자국산업이 어려우면 가차없이 보호주의 칼날을 들이미는 미국의 신보호무역주의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이번 하이닉스 문제를 결코 국부적인 통상마찰로 처리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번 하이닉스 문제로 보면 그간 IMF권고로 진행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루어진 채권은행의 금융지원은 모두 정부 보조금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격심한 통상마찰에 노출되게 마련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반도체를 비롯한 각 산업에 대한 보조금 관행을 집중 거론한 것으로 알려진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통상환경은 날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KOTRA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올들어 7월 현재 미국, 유럽연합(EU) 등 총 20개국(EU는 1개국으로 간주)으로부터 총 139건의 수입규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이나 개도국을 불문하고 통상공세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산업정책과 관행은 지금 세계 각국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 이를 효율적으로 극복하는 길은 정책과 관행 역시 보다 투명하게 글로벌 스탠드에 맞춤으로써 상대방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하이닉스 하나만의 문제로 보고 대처하기보다는 미국의 전방위적 통상공세에 대응해 종합적인 통상전략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