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광활한 `인터넷 한국`

 최근 친한 친구 중 한명이 유럽과 중국을 돌아보고 올 기회가 있었다. 한번도 우리나라를 벗어난 적이 없던 그는 여행 후 나를 붙잡고 1∼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땅끝과 땅끝이 맞닿아서 보이는 타클라마칸 사막, 하늘 가득 펼쳐진 별들, 입이 딱 벌어지는 성당, 눈이 휘둥그레지는 여러 건축물들……. 그리고 세상이 정말 넓다며, 한국이 이렇게 좁은 곳인 줄 몰랐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긴 우리나라의 면적이 중국의 약 44분의 1 정도에 불과한 마당에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었다.

 그러고 보면 필자가 미국에 처음 방문했을 당시 인상에 가장 뚜렷이 남았던 것은 사막 끝에서 끝으로 이어진 도로였었다. 그 때 역시 사람은 땅이 넓은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넓은 곳에서 소리도 질러보고 끝까지 달려봐야 내 마음도 넓어지겠다’는 상상을 해본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존재했던 많은 나라, 왕들이 나름대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애를 썼던 아니었을까?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들 중에 개인적으로 반가운 생각이 드는 것이 있다. 인터넷의 세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땅 넓이가 무척이나 넓다는 사실이다. 그 어디에서도 이뤄지지 않았던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자연스런 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포브스지에서 보도했던 것처럼 정치·오락·섹스·매스미디어·범죄·상업활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상에서도 오프라인과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추구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파괴가 우리나라에서는 가상공간을 매개로 거침없이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한발 먼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뒤따르고 있다. 예를들면 우리나라에서 노사모가 생겨나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일으켰던 것을 보고 미국에서는 최근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를 지지하는 ‘딘사모’가 결성되어 대통령 후보 경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의 아바타 아이템과 비슷하게 가장 최근에 발표된 MSN 6.0에서 사진을 넣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보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우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같다. 우리나라가 인터넷에서 선두주자로 발돋움을 하게 된 데는 도로망의 역할을 한 인터넷망의 보급이 주 요인이 되었겠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정보의 보관창고 역할을 하는 저장장치의 영토확장에도 생각이 머물지 않을 수 없다.

 양적인 확장을 보면 현재 컴퓨터에 일반적으로 장착되고 있는 80Gb HDD의 경우 영문 글자 기준으로 100억자, 신문 64만장, 단행본 1만2800권 분량을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는 양이다. 만약 이 정도의 분량을 책으로 구매한다면 1억3000만원 정도에 달하며 저장된 책을 일주일에 2권씩 읽는다고 해도 100년 이상 읽을 수 있다. 이 정도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의 가격이 현재 10만원 대이니 같은 가격으로 컴퓨터의 물리적 저장공간을 예전보다 몇배나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필자가 일하는 회사에서 내놓은 300Gb대 용량의 HDD는 필자가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의 제품에 비해 용량이 1만5000배나 차이가 난다.

 용량확장은 비단 컴퓨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하드디스크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추진하는 인터넷과 연동된 냉장고, 전자레인지, 셋톱박스,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에 빠짐없이 사용된다. 최근 HDD의 크기가 제품에 장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들고 활용범위 또한 자동차·MP3플레이어·DVR 등으로 넓어지자 예전의 생각을 접는 형편이다.

 이제 영토상으로는 주변국과의 마찰로 땅을 넓히기도 쉽지 않거니와 우리 주변국들이 강대국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가상공간인 인터넷 세계에서는 한국의 땅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계속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기회에 지금 쓰고 있는 내 컴퓨터의 물리적 영토를 2∼3배 정도 넓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국 맥스터코리아 강성규 지사장  sg_kang@maxt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