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통합(NI)업체들에 지난 상반기는 기나긴 터널과 같았다. 연초까지만 해도 터널 끝에 다다른 것으로 기대됐지만 좀처럼 그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 4월에는 코리아링크가 부도처리됐고 테라는 대표이사 구속이라는 내홍을 겪었다. ‘이제 더이상 네트워크를 가지고 수익을 올리기는 힘들다’는 업계 관계자의 자조섞인 말처럼 NI업계는 기로에 서 있다.
◇부진의 연속=오는 9월 창립 20주년을 맞는 콤텍시스템은 기념행사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당초 20주년을 맞아 외부 고객들도 초대해 기념행사를 가지려했지만 상반기 성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기 때문이다.
콤텍 관계자는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행사를 열기는 부담스럽다”며 “내부행사만 간단히 치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문 NI업체 중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던 콤텍이 이 정도라면 다른 중소 NI업체의 부진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올 상반기에도 지난해의 부진을 만회하지 못했으며 연초 수립한 사업목표도 달성키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부진의 원인=수년전만 해도 호황을 누렸던 NI업체들이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시장변화에 따른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네트워크시장이 급성장했던 90년대 중후반에는 NI업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늘어나는 인터넷 트래픽에 대응하기 위해 외산장비가 대량 도입됐지만 일반 기업에서 이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전문인력은 부족했다. 이에 따라 NI업체들은 단순 유통이 아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웬만한 중소기업들도 네트워크 전문인력을 보유한 지금, 상대적으로 NI업체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여기에 경기침체로 인한 출혈경쟁으로 수익성도 악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뒤늦게나마 NI업계가 사업다각화를 통해 부진 탈출을 시도했지만 이미 IT시장 전반에 걸쳐 불황이 퍼진 상황에서 NI업계가 새롭게 쉴 자리를 마련할 공간은 없었다.
NI업계는 정부의 지원책도 받기 힘들다. 국산장비 개발업체들은 산업육성 차원에서 정부에 지원 요구라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외산장비를 유통하는 NI업체들로서는 지원책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에 따라 NI업계에는 대표이사들간의 사적인 모임은 있지만 그 흔한 산업협의회 하나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변화만이 살길=비록 몇몇 업체들이 시도한 사업다각화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지만 변화가 절실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된 목소리다.
인성정보 원종윤 사장은 “장비유통을 통해서 일정 규모의 매출을 올릴 수는 있지만 수익을 늘리기는 힘든 만큼 다양한 부가 솔루션과 연계한 사업전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NI사업 자체를 포기하기보다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솔루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지금이라도 서비스 비용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동안 제품 원가를 숨기기 위해 서비스 비용을 제품단가에 포함시켜 청구했던 관례를 깨고 컨설팅·망설계·공사 등 무형의 비용을 별도로 산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NI업계가 지금의 위기를 넘지 못하고 단순 유통업체로 전락할지, 아니면 IT서비스업체로 거듭날지 하반기 업체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