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비밀을 빼내기 위한 첩보전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것 같다. 술집 종업원이나 이동전화 대리점 직원을 매수해 특정기업의 속사정을 듣거나 통화내용을 도청하는 것은 이미 고전이 됐을 정도다. 기업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의 경우 영화나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니 한마디로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파이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마타 하리다. 타고난 미모와 이국적인 누드 춤으로 남성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정계·재계·군부의 고위층을 유혹해 빼낸 정보를 독일에 제공함으로써 20만 연합군의 생명을 앗아간 전설적인 인물이다.
산업스파이에 의한 폐해도 이에 못지 않다. 기업은 물론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업스파이 사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는 대만으로의 반도체기술 유출사건이다. 검찰이 추정한 피해액만 1조2500억원에 이를 정도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지간한 재벌의 1년 매출액과 맞먹는 액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스파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와 이들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처벌의 실효성에 의문이 들 정도로 그 강도가 약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개인은 징역 10년이나 벌금 50만달러, 기업은 5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그 기술을 외국에 팔아 넘기면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 비밀의 국외 및 국내 유출시 각각 벌금 1억원 이하와 5000만원 이하다. 첨단기술 등을 빼돌려 수십억원대의 이익을 얻어도 벌금은 1억원을 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솜방망이 같았던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규정이 강화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 비밀을 외부에 빼돌리면서 얻은 이익의 10배를 벌금으로 부과하게 되면 한탕주의에 빠져 기업 비밀을 유출하는 사례는 막을 수 있다. 산업스파이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박광선 논설위원 k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