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비운의 기업인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4일 새벽 투신자살했다. 정확한 자살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정몽헌 개인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운의 기업인’이라는 점이다.

 분단의 역사, 정경유착의 역사, 재벌의 역사가 그것이다. 어쩌면 정 회장 사건은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을 통해 초토화된 국토 위에서, 정권과 재벌은 상호 윈윈전략(?)을 구사하며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형성해왔고, 그 과정에서 부도덕한 부와 권력의 형성은 어떻게 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권력 재창출을 위해 권력은 재벌을 통해 통치자금을 모았고, 재벌은 자금을 대는 대신 각종 특혜와 배려(?)를 통해 성장해왔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재벌 순위가 바뀌고, 심지어는 재계 순위 수십위 안에 들었던 기업들이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각종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외부로 드러낼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정치판에 쏟아부었다.

 심지어 고 정주영 회장이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는 ‘얼마나 맺힌 것이 많으면 직접 하려고 나서느냐’는 식의 농담 아닌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다.

 아직 정확한 시시비비가 가려지지는 않았지만, 대북송금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몽헌 회장은 남북관계를 수십년 이상 앞당겼다고 평가받는 남북경제협력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지만, 최근의 상황은 남북경제협력사업과 그 자신을 각종 탈법이 난무한 정치 스캔들의 주역으로 만들어버렸다. 정 회장도 대북송금 의혹으로 법정을 오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고민을 자주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제 정 회장은 무거운 짐을 벗고 떠나며, 우리에게 한가지 교훈을 남겼다. 기업인은 기업인답고,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몽헌 회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더 이상 이와 같은 슬픈 현실이 이 사회에서 재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디지털경제부·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