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공기관의 국산장비 역차별

 한동안 잠잠했던 공공기관의 국산 네트워크장비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경찰청이 네트워크 확장을 추진하면서 중소형 구분없이 동일 제조사 장비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툭하면 공공기관의 입찰과정에서 불거지는 이러한 시비는 이제 식상하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역차별 여부를 떠나 국산 네트워크장비산업의 현 주소를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실로 기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경찰청이 굳이 동일 제조사 항목에 집착했던 뒷배경에는 국산 장비에 대한 불신이 깊게 깔려있다.

 이같은 항목없이 입찰을 실시할 경우 일정 기술규격을 충족시키면 가장 낮은 공급가를 제안한 업체에 공급권이 주어지는 조달입찰 방식에 따라 값싼 국산 장비가 대거 도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있는 것이다.

 최근 국산업계의 기술경쟁력이 향상돼,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선진국 업체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장비가 여전히 ‘싼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 선진국’으로 불리는 상황에서 정작 그 속을 채우는 네트워크장비는 수준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더욱이 취재과정에서 접한 한 공공기관 네트워크 관리자의 말은 더욱 뼈아프다. ‘국산 장비를 도입했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실무자들이 책임을 뒤집어쓴다. 기존 외산 장비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국산 장비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에서 국산 네트워크장비산업의 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놓고 누구를 탓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국산 장비에 대한 ‘불신’을 ‘신뢰’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업체들의 피나는 노력이 요구된다.

 눈앞의 매출확보를 위해 무조건 저가정책을 펼치고, 원가절감이라는 명목아래 툭하면 대만산 제품을 들여오고, 장기적인 개발전략없이 한때의 유행을 쫓아 나서는 등의 사업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무자들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지만 경찰청도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국내업체들에도 동등한 입찰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경찰청이 입찰조건을 바꾸는 것 못지않게 국내업체들이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실력을 배양하는 것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