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면 클수록 좋다. 큰 기업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동안 재계가 신봉해왔던 말이다. 규모가 크면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정부가 최악의 상황만은 막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아무리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도 수십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재벌그룹의 총수가 구속되거나 기업이 와해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나온 말이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이다.
대마불사란 말을 신봉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크면 정부가 망하게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는 대마불사론에 사로 잡혀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존전략의 대표적인 사례가 다이이치간교, 후지, 일본산업은행을 합병해 세계 최대 금융그룹으로 출범시킨 미즈호홀딩스다. 시너지 효과보다는 덩치 키우기에 연연한 합병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마불사란 말은 바둑에서 나오는 용어다. 덩치가 크면 이곳 저곳에 생명력이 숨어있어 쉽게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바둑의 고수들은 대마를 잡지 않는다. 위험부담이 클 뿐 아니라 성공확률도 낮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고 대마는 무조건 산다는 것은 아니다. 대마도 잘못하면 죽는다.
재계가 신봉하던 대마불사론도 마찬가지다. 대우그룹 사태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구속이 말해주듯이 세월이 변하면서 대마불사의 신화도 이미 어제의 이야기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 500대 기업도 마찬가지다. 전년보다 89% 증가한 2002년도 순이익 편차가 방증하는 것처럼 세계적인 기업들도 1등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실제로 지난 95년 매출과 이익 부문에서 상위 50대 기업에 랭크된 기업 가운데 2002년 현재 남아있는 기업은 각각 35개와 23개에 불과할 정도라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덩치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박광선위원 k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