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또다른 장애

 불치병인 루게릭병이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루게릭병’을 입력하면 병에 대한 설명 가운데 호킹 박사 이름이 꼭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루게릭병에 걸린 후 우주물리학 연구에 나서 신체 장애를 딛고 ‘양자우주론’, ‘블랙홀 증발’ 등 우주 생성 비밀에 가장 근접한 이론을 제시하는 등 현대물리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에다 폐렴으로 기관지까지 절개한 그는 말도 못하고 손가락 두 개만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 90년 한국을 방문, ‘블랙홀과 아기우주’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나 강연할 정도로 활동이 활발하다. 이같은 그의 활동은 방한 때 사진이라도 본 사람이면 기억하겠지만 전동휠체어에 달린 음성합성기 등 첨단 컴퓨터 입력장치 덕분이다.

 첨단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해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는 사람중 미국에서 증권투자나 경영자문을 하는 시각장애 애널리스트들을 꼽을 수 있다. 시각장애인 전문직종으로 자리잡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다. 이에 대해 시각장애인이 미래를 보는 예견적 지혜가 탁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이 보다도 시각장애인들이 음성컴퓨터를 통해 지식정보에 접근이 용이하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동이나 건축물 등 물리적 환경 접근에 한계가 있던 사람의 경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로 분류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로 들어서면서 지식산업의 비중이 높아져 장애인도 지식정보 접근이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으면 경증장애인으로, 심지어 무장애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히려 정보 접근에 문제가 있는 것을 심각한 장애로 여겨지는 등 장애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정보격차(Digital Divide) 해소 문제도 이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핵심 자원인 정보에 대한 접근성에 문제가 없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격차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이른바 컴맹이라는 디지털 주변인으로 전락한 이유는 우선 컴퓨터 및 인터넷 활용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사이트 개발자들이 장애인들이 이용한다는 사실을 대부분 간과한 채 사이트를 개발해 일반인처럼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하드웨어 구입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시각·청각·지체장애인이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말소리로 자판 입력을 대신하는 ‘음성키보드’, 점자출력판이 달린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등 특수 장치가 필요하지만 대부분 고가품이고 그나마 개인적으로 구하기도 쉽지 않다.

 정보통신부가 최근 장애인 정보화 확산 차원에서 1만명의 장애인에게 정보 접근에 도움을 주는 장애인용 정보통신기기를 구입, 지원할 계획으로 대상기기 및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되는 100여종의 장애인용 정보통신기기 가운데 국산품은 20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지원이 적어 업체들이 국산 제품 개발에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 ‘정보화’가 얼마나 먼 나라 얘기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로 시작된 IT가 장애인에게는 또다른 장애를 만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