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철 기자의 IT@JAPAN]일본, 윈도 침몰의 신호탄 쏘나

 80년대 전자기기 왕국 일본은 90년대 들어서 정보기술(IT) 파워 미국에 무릎을 꿇었다.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결국 미국의 IT 토네이도에 삼켜져 사라진 시간인 셈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미국의 힘 한 가운데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가 있다.

 세계 노트북 빅3인 도시바의 한 간부는 “윈도는 일본 경제인들에게 한 마디로 충격적인 존재였다”고 회고한다. 왜냐하면 일본 기업들에게 ‘시장에 내놓는 제품은 그 자체로 완벽해야 한다’는 장인정신이 절대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툭 하면 고장나는(다운되는) 불완전한 상품’이 일본 PC시장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자존심에 상처입은 일본인들에게 윈도에 대한 은근한 반감이 스며있다. 이를테면 ‘80년대 일본은 독자 운용체계(OS)인 트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공개 소프트웨어(SW)였던 트론을 PC의 OS로 쓰지 못하게 일본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 어느 일본인도 감히 윈도 비난에 나서지 못했다. 그만큼 미국이 무서웠고 MS도 두려운 존재였다.

 때를 기다려온 사무라이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삼은 듯 하다. ‘윈도 이지메’에 나서고 있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집단적으로 한 대상을 괴롭히고 따돌린다’는 이지메의 뜻처럼 업계는 물론 정부도 동참하고 있다. 목표는 MS가 차세대 시장으로 잔뜩 눈독을 두고 있는 ‘임베디드OS’와 서버용 OS.

 사무라이는 지능적으로 움직인다. 우선 일본이 강한 정보가전이 임베디드OS의 주요 시장이기에 ‘NO 윈도, YES 리눅스’ 자세를 굳게 한다. 또 한국, 중국, 유럽 등을 동지로 끌어안으려한다.

 일 정부는 2조엔(약 20조원)에 달하는 공공서버시장에서 리눅스를 발주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첫 리눅스 채택 사례가 나왔다. 또 일본 독자 OS 트론의 성능 향상을 맡고 있는 T엔진포럼이 3월 리눅스 전문업체 몬타비스타소프트웨어와 손을 잡았다. 트론과 리눅스를 합쳐 휴대폰용 임베디드OS를 만들기 위해서다. 7월에는 마쓰시타·소니·히타치 등 일본 업체들이 중심에 서고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를 끌여들여 CE리눅스포럼을 설립키로 결정했다. 포럼은 가전제품 및 통신제품에 들어갈 임베디드 리눅스의 기능향상 및 보급에 나선다.

 급기야 이달 3일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 정부를 동지로 포섭(?)하는데 성공, 동북아 공통의 오픈소스소프트웨어(OSS)를 개발해 실용화하기로 합의했다. ‘탈 윈도 전선’이 강화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세계의 공장 중국의 참여는 향후 전개에 유리한 카드로 작용한다.

 일본이 윈도를 공격하는 이유는 단지 ‘미운 털’ 때문 만은 아니다. 정부로선 ‘소스가 공개되지 않는 OS에 공공시스템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또 업계는 ‘독자 개발력을 키우기 위해선 윈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MS는 속이 탄다.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일본 시장을 잃을까 봐 안절부절 못한다. 또 일본이 반MS의 기수를 자처하는데 위협을 느낀다. 올 1월 MS는 윈도의 설계 정보를 일본 정부에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2월에는 빌 게이츠 MS 전회장이 일본을 방문, 리눅스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MS일본법인의 마이클 로딩 사장은 지난달 “객관적인 제 3자의 눈으로 윈도와 리눅스를 공정하게 평가해달라. 운영을 포함한 토털 경비는 오히려 윈도가 싸다”고 읍소키도 했다.

 앞으로 일본과 MS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또 세계 IT업계에는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자못 흥미를 끄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