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장사를 하기 위해 김밥집을 하는 건물주인한테 점포를 빌린 후 김밥까지 말아 판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것도 떡볶이와 김밥을 세트 메뉴로 만들어 건물주의 김밥보다 더 싸게 판다면 같은 건물에 떡볶이 점포를 임대해준 건물 주인의 심기는 꽤나 불편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초고속인터넷시장에서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급기야 법의 심판대에 까지 올랐다.
통신사업자인 KT는 최근 경기도 성남·분당지역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인 아름방송을 상대로 대여설비의 목적외 사용금지 청구소송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제출했다. 케이블TV 방송을 한다고 해서 전주와 관로를 빌려줬는데 초고속인터넷서비스까지 번들로 싸게 제공하면서 고객을 빼앗아가고 있는데 분개한 것이다.
방송사업자가 통신사업자보다 초고속 인터넷서비스를 더 싸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케이블TV망을 설치하는 비용이 전화선보다 낮기 때문. 뿐만 아니라 케이블TV 가입자를 늘릴 수 있는 카드로 초고속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잇점도 있다.
방송사업자들은 전주나 관로는 단순한 보조수단에 불과하다고 강변한다. 더 나아가 KT가 공공자산인 관로의 독점사용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계약 내용의 불공정성을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상도의로 보면 임대계약서를 위반한 유선방송사업자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물건을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시장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것도 KT 민영화 이전에 설치한 사실상의 공공자산을 유료로 사용하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나쁠게 없을 것이다.
이번 마찰이 어떻게 판결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초고속 인터넷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신과 방송 융합의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