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영정의 미소

 이번 추석연휴에 불어닥친 초강력 태풍 ‘매미’는 500만명에 달하는 남부지방 주민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었다. 강풍으로 인해 전주가 뿌리째 뽑히고 변압기가 폭발해 전기가 끊기는가 하면 수도물이 나오지 않고 전화가 불통되는 등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최악의 밤을 보냈다. 지난 1904년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최대 순간 풍속(초속 60m)을 기록하면서 왠만한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부산항 컨테이너 전용부두의 대형 크레인마저 줄줄이 넘어졌다.

 태풍 ‘매미’에 비하면 사소한 뉴스지만 IT업계에선 별 하나가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지병인 대장암으로 56세에 별세한 이상헌 전 한국선마이크로시스템스 사장은 우리나라 IT산업 발전과 정보화 촉진에 기여한 인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디지탈, 한국NCR 등 외국계 IT기업의 CEO를 맡아 일반인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MIT 공학박사 출신으로 선진국 IT기술의 국내 보급에 힘써온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다. 지난 1999년 한국선 CEO로 취임한 후에는 연간 매출액을 3300억원으로 끌어올리는 경영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프로정신과 상생(相生)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IT업계에 희망을 던져준 인물이다. 최고경영자의 덕목으로 전문성을 가장 우선시했으며 남을 밟고 일어서기 보다는 윈윈 전략을 앞세워 외국계 국내기업은 물론 우리나라 IT기업들의 실질적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초 암 판정을 받고나서는 기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스스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 본격적인 투병에 들어가기 전까지 후학(경북대)에 힘썼다.

 그래서 “아직은 한창 일할 때인데···”라며 말 끝을 맺지못하는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의 아쉬움은 빈소를 더욱 숙연케 했다.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영정속의 고인은 턱을 가볍게 고인 환한 미소로 IT업계의 앞날을 밝게 비춰줬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