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벤처CEO가 정계 진출한다면

 “매출 20% 정도는 까먹을 것으로 생각한다.”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이 지난 2001년 2월 이민화 벤처기업협회장의 잔여임기(1년)를 끝내고 타천으로 다시 협회장을 떠맡고 난 후에 한 말이다. 그러나 그의 상처는 더 컸다. 2000년까지만 해도 흑자를 내던 터보테크가 2001년부터 적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벤처업계의 대변자임을 자청하면서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몸이 파김치가 된 대가치고는 억울함도 클 것이다.

 또 터보테크의 적자행진이 장 사장이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 회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다. 지속된 경기침체와 사업환경의 악화 등으로 상당수 기업, 특히 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 사장이 내치에 힘썼더라면 2년6개월간 연속 적자를 기록했겠냐는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이다.

 요즘에는 장 사장을 포함한 몇몇 벤처CEO가 정치마당에 거론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벤처CEO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벤처업계의 시각도 지난 2000년 16대 총선때와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당시에는 벤처CEO의 국회진출이 벤처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지금은 발전적 벤처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벤처인의 정계진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벤처CEO의 정계 진출은 그 당위성이 없지는 않다. 벤처가 지난 국민의정부때 성장동력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거품 걷어내기 과정에서 한켠으로 밀려나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특히 참여정부들어선 벤처도 시장논리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명제에 갇혀 이렇다할 정책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국회가 각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응집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벤처인이 직접 의정활동에 참여하는게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장 사장의 예에서도 나타났듯이 벤처CEO가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면 그 폐혜 또한 막대하다. 그것도 오너 CEO인 경우에는 더하다. 그래도 자신의 회사만을 위하는 것보다는 벤처산업 전체를 생각하는 대의를 품고 국회에 나간다고 하자. 험난한 정치바닥에서 정치 초년생이 펼칠 수 있는 웅지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이 이미 보여줬다.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지만 기업은 주주의 이익과 종업원의 생계를 가장 우선시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CEO가 경영을 잘 못하거나 등한시해 주주나 종업원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薺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만약 정치권에서 총선출마 제의받는다면 그 벤처CEO는 한번쯤 자신의 욕심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벤처를 위해서’라는 살신성인의 뜻속에 욕심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 냉정히 돌이켜봐야 한다. 욕심이란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것과 같다. 채울수록 더 갈증이 나는게 욕심이다. 버리면 행복하다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버릴 수 없는 것이 욕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욕심의 노예가 되어 마지막 황혼의 순간마저 추하게 살다가 허망하게 떠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아왔다. 벤처CEO들이 정치권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