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느림의 미학

 속도 경쟁의 시대다. 모든 면에서 남보다 앞서야하며, 한 걸음이라도 뒤지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우리네 부모들이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철부지 아이들을 조기교육의 현장으로 내모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갈수록 빨라지는 속도 경쟁에서 뒤질 경우 치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간 속도경쟁은 총성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다. 기술이 발전하고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지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종이 선보일 정도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 걸음 차이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실제로 휴대전화는 1주일에 1개 꼴로 신제품이 출시되고, 6개월이던 디지털카메라의 모델 수명도 3개월로 단축됐다. 뿐만 아니라 PC 저장장치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DVD RW(기록형 DVD)와 프린터는 반년만에 가격이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마치 유행에 민감한 패션산업을 보는 것 같다.

 초고속인터넷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좀 더 빠르게’라는 속도경쟁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ADSL로 출발한 국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는 불과 4년만에 초고속디지털가입자회선(VDSL)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정도다.

 이럴 때일수록 느림의 미학(美學)이 필요한 것 같다.

 山行忘坐坐忘行(산행망좌좌망행)

 歇馬松陰聽水聲(헐마송음청수성)

 後我幾人先我去(후아기인선아거)

 各歸其止又何爭(각귀기지우하쟁)

 산길 가다보면 쉬는 걸 잊고 쉬다보면 갈 줄을 모르는데/소나무 그늘에 말 쉬게 하고 강물 소리를 듣네/뒤에 오던 몇 사람이 나를 따라 앞섰으나/제각기 제 길 가니 그 무슨 상관이랴.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 선조(宣祖)때 학자 송익필(宋翼弼)의 산행(山行)으로 마치 속도의 노예가 된 것처럼 빨리 빨리만 찾고 있는 현대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글귀다.

 박광선 논설위원 k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