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IT표준전쟁

 지금 정보기술(IT) 표준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IT와 연관된 제품은 그 속성상 사전에 약속된 프로토콜에 따라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이 출현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IT 제품에 대한 어느 한 회사의 시장 지배력은 그 제품과 관련된 표준을 제정하는데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시장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자사 제품을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끌어가는 것이다. 윈도우 계열의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실상 표준을 장악함으로서 이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사실상 표준은 시장지배력이 크기 때문에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 법정에서 독점금지법에 위배되는 혐의로 장기간 법정 투쟁을 벌인 것이라든지, 반대 진영에서 리눅스 운영체계를 활성화하여 윈도우 계열 운영체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느 한 회사가 자사 제품을 사실상 표준으로 끌어가기 어려울 때 이해 관계가 밀접한 몇몇 회사가 연합하여 표준을 끌어가는 방법(컨소시엄)도 있다. 시장 지배력을 컨소시엄 가입 회사들끼리 나눠 가지겠다는 것이다. 요즘 IT 분야 가운데 시장 규모가 큰 주요 표준은 대부분 컨소시엄 형태를 띠고 있다.

 3세대(G) 이동통신 표준을 이끌어 가는 3GPP나 3GPP2, 동영상 표준을 주도하고 있는 MPEG, 디지털홈 관련 표준을 주도하는 각종 단체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컨소시엄 형태의 특징은 컨소시엄 가입비용을 엄청나게 크게 하여 중소업체에서는 감히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컨소시엄 가입 회사끼리 표준 정보와 지적재산권을 나눠 갖는다는 점이다.

 IT 분야 표준화 대상은 광범위하기 때문에 각종 포럼 형태로 조직화되어 운영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포럼 형태의 경우 가입비용이 컨소시엄 형태보다는 일반적으로 적고 부담이 덜 하다. 그래서 요즘 포럼이 국내외에서 많이 결성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IT 분야의 포럼이 구성되어 있고, 국내에도 30여개가 있다.

 그럼 IT 표준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의 핵심 원천기술과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표준화 과정에서는 물론 표준이 완료되어 제품화할 때 제품 경쟁력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사항은 사람이다. 일반 전쟁에서 군인이 중요하듯이 표준 전쟁에서 이기려면 훌륭한 인적 자원이 필수적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외국어 구사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덧붙여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능력도 필요하다.

 세 번째로 유의할 사항은 글로벌스탠더드의 추진이다. 우리 국내 시장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에만 통용되는 표준은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되어가고 있는 현재 의미가 없다. 자국에서만 적용되는 표준을 만들어 성공적이지 못한 사례로는 일본의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들 수 있다. 디지털 지상파 방송 표준에는 북미식과 유럽식 그리고 일본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1년부터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하고 있으나 일본은 독자적으로 자국 표준을 추진했는데 아직 상용 방송을 못하고 있다. 전자 산업 강국인 일본에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은 과거 자국에만 통용되는 표준을 만들어 시장 보호에 잘 활용하였으나 글로벌화 되고 있는 요즘에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네 번째로는 중점 표준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다. IT 분야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집중할 분야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참여 정부가 신성장 동력 엔진으로 선정한 10대 과제가 집중 투자할 분야로 볼 수 있다.

 현재 IT분야엔 시장 선점을 위한 표준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칼과 총과 대포 대신에 새로운 신기술을 가지고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IT산업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우리 모두 소리 없는 IT 표준 전장에서 이기기 위해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임주환 TTA사무총장 chyim@t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