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대일 무역역조 품목인 현금자동입출기(ATM)의 부품국산화를 위해 산업자원부가 추진중인 국책사업이 업체간 반목으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기술개발의 헤게모니를 서로 쥐려는 3대 ATM 제조업체들의 지나친 욕심은 노틸러스효성 주관과 청호컴넷·LG엔시스 주축의 두개 컨소시엄간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경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양쪽 컨소시엄 관계자들이 지나친 감정싸움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 사이에는 “우리가 국책사업을 맡아 국산화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일본에서 수입해다 쓰겠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국산화가 성공하더라도 반쪽의 성공에 그칠 공산이 크다. ‘대일역조 개선’이라는 국책사업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경쟁사 제품을 쓰기보다 차라리 수입제품을 사용하겠다는 빗나간 자존심은 해당 기업이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태가 이지경이 되기까지는 노틸러스효성측에게도 책임이 있다. 효성은 ‘1등 업체가 개발의 주도권을 갖는 게 당연하다’며 개발기술의 독식 의지를 내비치고 잦은 말바꾸기로 경쟁사들의 불신과 불만을 자초했다.
한국조폐공사와 전자부품연구원 등 주요 공기관의 신중치 못한 처신도 갈등을 부추겼다. 조폐공사는 화폐제조와 유통을 국가차원에서 독점하고 있는 공기관이다. 조폐공사가 효성컨소시엄에 참여함에 따라 11월에 있을 선정심사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게 청호컴넷·LG엔시스의 주장이다.
상대는 중립성 등을 문제삼아 반발하고 있지만 공사측은 ‘규정상 하자는 없으며, 경쟁력 있는 컨소시엄에 참여했을 뿐’이라는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폐공사와 같은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공기관은 국책사업자 선정이 끝난후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이 현명했다고 지적한다. 업계는 물론 공기업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사업권 따기에만 혈안이 돼있을 뿐 부품 국산화라는 근본 취지 살리기는 뒷전이다. ATM 부품국산화가 약이 아닌 독이 될까 걱정된다.
<디지털산업부·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