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우리나라 최대의 경쟁국은 단연 일본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늘 우리나라를 앞서간 이웃나라 일본이었으나 디지털 시대에는 상황이 다르다. 우선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기회다.
이러한 일본이 디지털 시대의 꽃이라 불리는 디지털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이 본격적인 디지털방송 시대를 맞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통신과의 융합으로 더욱 주목을 받는 디지털방송이 우리나라의 차세대 성장 산업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 1996년 우리나라의 스카이라이프와 같은 유료방송인 CS위성방송을 통해 디지털방송을 시작했다. 현재 300만 가업자를 넘어서며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지난 2000년부터는 공영방송 NHK와 도쿄의 5개 주요 민영방송사(키 5국)들이 BS위성방송을 개국, 디지털방송을 시작했다.
특히 BS위성방송은 내달부터 도쿄·오사카·나고야 3개 대도시에서 시작되는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근간이 됐다. 2001년부터 지상파 디지털방송을 시작한 우리나라보다 3년 늦게 지상파 디지털방송을 시작하는 일본이나, BS위성방송을 통해 디지털방송의 경험을 축적한 일본에게는 3년이란 기간이 그다지 늦어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지상파 디지털TV(DTV) 전송방송 문제로 디지털방송의 전환일정 연기나 중단 논의가 대두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큰 위협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러 선진국에서 지상파 디지털방송을 실시중이지만, 일본이 이를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게 당장 큰 위협이다. 고선명(HD)TV 프로그램 방영을 디지털전환의 가장 큰 전략으로 삼은 일본이 세계 DTV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국이기 때문이다.
내년중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될 예정인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도 수신기와 무선중계기(갭필러)·콘텐츠 등 각종 부가 시장에서 양국간 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미 히로시 일본 총무성 방송기술과장은 “원래 일본은 처음 시작하는 게 느리지만 일단 시작하면 빠르게 움직인다. 휴대폰도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훨씬 보급이 느리다가 궤도에 오른 후에 빠르게 보급됐다. ADSL도 마찬가지 예다. 디지털방송도 마찬가지로 시작은 늦었지만 빠르게 보급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도쿄=유병수기자 bjorn@etnews.co.kr>
◆ 지상파방송 전환 어떻게 되나
일본은 지난 2000년부터 BS위성방송이라는 이름으로 NHK와 5개 민영방송사들이 전국을 대상으로 HDTV, 양방향 데이터방송 등 디지털방송을 시작했다. 다음달 지상파 디지털방송 개시에는 큰 지장없는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함 셈이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또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상파방송은 방송서비스중 가장 보편적인 서비스기 때문에 지상파방송의 디지털전환은 곧 일반 대다수 국민들을 대상으로한 DTV수신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수시장을 시작으로 일본의 가전업체들이 본격적으로 DTV 수신기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이는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가전업체들에 대한 선전포고를 의미한다.
또 우리나라와는 전파 월경의 문제도 대두된다. 일본은 2011년까지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 완료를 위해 기존 아날로그방송 주파수 재배치 작업에 한창이다.
기존 아날로그방송에서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역의 방송수신을 방해한 일본 방송전파는 디지털방송에서도 지속될 전망이다. 물론 전송방식이 같아 일본의 방송이 그대로 잡히는 아날로그방송 때와는 달리 디지털방송에서는 독자 방식을 취한 일본방송이 미국방식을 채택한 우리 방송에 잡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송 주파수에 혼신을 초래해 국내 방송수신을 크게 방해하게 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남서부 지역 시청자들이 우리나라 방송 주파수로 인해 방송 시청에 큰 지장을 받게 된다.
한쪽이 주파수를 변경해 양보를 하거나, 양국이 기지국의 위치에서부터 주파수 현황, 안테나의 재원에 이르기까지 서로 정보를 공유해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양국의 입장이 그렇지 않아 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아날로그방송에서 지난 40여년간 일방적인 피해를 본 우리나라가 디지털방송을 먼저 시작했으니 양보를 할 리는 만무하고, 일본 역시 심각한 주파수 부족으로 양보는 커녕 조정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양국 디지털위성방송 비교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스카이라이프와 스카이퍼펙TV라는 거대 디지털 위성방송사업자가 있다.
유료 디지털 위성방송은 일본이 4년 일찍 시작했으나 가입자 측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일본 스카이퍼펙TV는 방송 7년만에 300만 가입자를 돌파했으며, 스카이라이프는 2년이 안된 시점에서 10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물론 일본이 3배 많은 가입자를 확보했으나 시장규모나 사업연도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격차가 뚜렷하다.
우선 채널수에서 스카이퍼펙TV는 150여개 채널인 스카이라이프보다 2배인 300여개 이상의 채널을 서비스한다. 방송 콘텐츠의 왕국인 일본이 채널수에서 당연히 압도적이다.
지상파TV 재송신에 사활을 거는 국내 사정과 비교된다.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일본의 스카이퍼펙TV는 지상파TV를 재송신하지 않아도 가입자들의 불만을 사지 않는다.
스카이퍼펙TV는 경쟁 유료방송사업자인 케이블TV 사업자들의 견제도 심하게 받고 있지 않으며, DTH(Direct to Home) 방식외에 공시청수신설비이용방송(SMATV)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더욱이 올해안에 광가입자망(FTTH)을 이용한 방송 서비스까지 계획하고 있어, 가입자 확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같이 일본의 위성방송사업자인 스카이퍼펙TV는 걸음마 단계인 스카이라이프에 비해 유리한 사업 환경에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수익 또한 올해 흑자로 돌아서 안정된 방송매체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호소다 야스시 스카이퍼펙TV 회장은 “2007년 500만 세대 가입을 목표로 삼았다. 일본 총 세대수는 4800만세대에 이르며 이 중 10%정도를 무난히 확보할 것”이라면서 “기존의 위성을 통한 방송 이외에 FTTH를 이용한 방송 가입자가 2007년 50만세대에 달할 것”이라며 기대했다.
◆ 위성DMB시장 전망
한국과 일본은 위성을 공동사용해 양국 모두 내년 상반기중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상용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양국의 위성DMB사업자들은 위성을 공동 사용할 뿐 아니라 일본의 위성DMB사업자인 MBCo에 SK텔레콤이 2대주주로, 국내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위성DMB컨소시엄에 MBCo의 최대주주인 도시바가 2대주주로 참여해 서로 공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위성DMB의 서비스 측면에서 그럴 뿐이다. 각종 부가 산업에선 양국이 치열한 시장선점 경쟁과 해외진출 경쟁이 예고됐다.
대표적인 것이 위성DMB 단말기 시장이다. 같은 표준을 채택해 단말기 시장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MBCo의 최대주주인 도시바가 가장 신경쓰는 것도 이 대목이다.
양국의 서비스 주체인 도시바와 SK텔레콤은 서비스 목표가 서로 다르다. SK텔레콤이 이동통신 사업의 확장을 위해 시작했다면, 가전업체인 도시바는 위성DMB 단말기 시장을 노리고 사업에 진출했다. 따라서 SK텔레콤은 휴대용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나, 도시바는 일본내 차량용 서비스를 지향한다. 도시바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도시바는 한국에서 위성DMB 휴대형 단말기를 개발중인 삼성전자를 가장 의식한다.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내 위성DMB 단말기 시장을 성공적으로 장악하면 일본내 진출도 곧 가사화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목표로 중국 위성DMB 시장도 노리는 MBCo지만, 중국내 단말기 시장에서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역부족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밖에 무선중계기(갭필러) 시장에서도 양국의 격돌이 예상된다. 가격 경쟁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가진 국내 갭필러 업체들의 일본 진출도 기대할 수 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한일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