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인터넷프로토콜(IPv6)망의 근간을 이루는 라우터 시장이 IPv4 기반의 시장과는 달리 외산업체에 통째로 잠식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들어 상당수의 외산업체들이 이미 IPv6 라우터를 발표했거나 업그레이드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업체는 아직 이렇다할 제품을 개발해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 주도권을 외산업체가 선점, 지난 IPv4 시장처럼 정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비시장은 고스란히 해외업체들에게 내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외산업계 IPv6 시장 싹쓸이 ‘야심’=국내 라우터 시장을 주도해온 시스코는 최근 출시되는 모든 제품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및 라인카드 교체를 통해 IPv6 지원이 가능토록 하고 있으며, LG히다찌를 통해 국내에 제품을 공급하는 일본의 히타치는 이미 2년여전부터 제품 개발을 마치고 적극적인 IPv6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전산원의 IPv6 시범망 6kanet(IPv6 Korea Advnced Network)과 이에 맞물려 서비스를 받고 있는 40여 공공기관은 정부의 IPv6 장비 국산화 기치와는 달리 모두 시스코와 히타치 라우터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 강남·동대문 등 산하 22개 도서관의 IPv6 라우터 교체를 추진중인 서울시립도서관도 마땅한 국산장비가 없어 또다시 외산장비를 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국산업체 시장 확보 ‘불투명’=현재 국내에서는 ETRI·삼성전자·LG전자 등이 IPv6 라우터 개발을 추진중이며 아이비트·에스넷 등 몇몇 중소벤처업들은 IPv6주소변환장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추진중인 라우터의 경우 내년에나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고 그나마 백본급이 아니라 가입자망에 설치되는 소형 에지 라우터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업체와 정부가 큰 희망을 걸고 있는 주소변환장비도 IPv4와 IPv6망이 공존하는 기간을 겨냥해 개발되고 있지만 시스코의 경우 최신 라우터에는 주소변환 기능을 탑재하고 있고, 히타치는 이미 관련 제품을 출시한 상태라 시장 진입 전망이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구체적인 지원책 시급=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외산업체에 비해 IPv6 라우터 개발이 늦은 점을 인정하고 향후 개발되는 장비가 시장에서 외산장비와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비트의 이정환 IPv6개발 팀장은 “단순한 투자보다는 국산 장비 도입을 하는 고객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등의 구체적인 지원책을 통해 국내 후발업체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중소업체들의 IPv6 장비 개발 부진은 3∼4년 뒤를 내다보고 섣불리 개발비용을 투입할 여유가 없는 것에서 비롯된만큼 실수요자인 통신사업자가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투자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