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덩치를 키우자

 최근 IT산업계에 인수합병(M&A) 이야기가 다시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경기가 어려운 만큼 지금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취약한 부문을 보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시스템통합(SI)업체부터 중소 소프트웨어업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금기시돼왔던 M&A가 수면위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M&A가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 동원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세계 IT시장에서는 세계 컴퓨터산업계를 재편했던 HP의 컴팩인수라는 대형사건을 필두로 컴퓨터와 스토리지 업체간, 하드웨어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간 M&A소식이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을 정도다. 다만 국내에서는 여러가지 법적인 규제와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CEO의 자괴감, 여기에 수반되는 부정적인 사회인식 등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좋은 도구를 제대로 활용치 못하고 있음은 부인키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 IT산업이 글로벌경제에 편입된 지 오랜 지금, M&A를 활성화하지 않고서는 현재와 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또 경기가 회복된다하더라도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IT경기가 밑바닥을 기면서 한건의 프로젝트가 발주되면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벌떼 처럼 프로젝트를 수주하겠다고 달려드는 게 요즘의 상황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라도 건지기 위해, 중소기업은 회사의 생존을 내걸고 치열한 수주전을 펼친다. 하지만 발주자 입장에서는 이름없는 중소·중견기업보다는 명성있는 대기업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공공기관의 프로젝트발주금액에 따라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법을 마련할 정도겠는가.

 이것은 비단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내기업과 외국기업간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막강한 자본력과 브랜드력을 앞세운 다국적 IT기업의 공세에 견뎌낼 국내기업들이 과연 몇이나 존재하겠는가.

 덩치를 키워야 한다. 기술력은 갖췄지만 자본력이 취약하고 대외이미지가 열악한 중소벤처기업들이 대기업이나 다국적기업과 맞서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다.

 국내 IT시장에서 자체기술력을 앞세워 틈새시장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업체들은 한둘이 아니다. 각각의 특화된 기술을 확보한 중소벤처기업들이 이제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래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공세에 맞설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CEO들의 의식변화다. 창업은 어렵지만 수성은 더욱 어렵다는 옛말이 있다. 더구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내가 갖고 있는 좋은 기술마저 제대로 활용치 못하고 그대로 사장시킬 위험성은 매우 높다. 더구나 대부분 중소벤처기업들의 CEO들은 전문경영인이라기보다는 엔지니어출신이다. 그들의 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내세워 무리하게 사업을 고집하기보다는 이 기술이 꽃필 수 있도록 M&A시장에 과감히 내놓는 용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덩치가 커진 회사를 내가 경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영은 능력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내가 원하던 일을 마음놓고 할 수 있다면 회사경영에서 얻는 보람 이상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중소전문업체들이 뭉쳐 하나의 기업으로 재탄생해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위기를 맞고 있는 토종IT기업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하는 지름길이며 지금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양승욱 정보사회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