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당초 11월말 예정됐던 시·군지역 지상파방송사 디지털TV 방송허가추천을 7개월 연기함으로써 지상파 디지털TV 서비스 전환일정이 사실상 유보됐다. 방송위의 결정은 디지털TV 방송일정 전면중단 및 전송방식 변경을 요구하는 기술인연합회와 방송사 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송위의 연기 결정으로, 우선 코앞에 닥친 광역시 소재 방송국들의 연내 디지털TV 방송일정에도 상당한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정부와 관련 단체들이 디지털TV 전송방식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늘 원점에서 맴돌았다. 물론 정보통신부와 방송위가 공동으로 해외 9개국의 디지털TV 방송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른 시일내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해외조사단의 활동이 진행중인 시점에서 방송위가 내린 이번 결정은 불필요한 오해와 또다른 논란거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디지털TV 방송허가추천’ 연기 결정이 단순한 방송정책 변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디지털TV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사안이란 점에 우리는 주목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방송위는 지난 2001년에도 광역시 소재 방송사의 디지털방송 허가 일정을 7개월 연기하여 시행한 전례를 들어, 이번 유예 결정도 2005년말 시행하는 본 방송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시·군지역 방송국에만 국한되는 지엽적인 문제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전송방식 변경’ 논란과 관련 광역시 소재 방송사 전환일정에도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는 결국 전국 지상파방송사의 디지털방송 전환일정에도 차질을 가져올게 뻔하다.
이번 방송위의 연기 결정에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지상파방송사의 디지털방송 전환 일정 차질에 따라 우리나라 디지털TV와 관련 산업이 입게될 피해이다. 세계 디지털TV시장이 2005년 220억달러, 2007년 500억달러로 급증할 전망이어서 우리나라 업체들이 이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생산규모 및 기술경쟁력 확보가 급선무다. 이러한 디지털TV업체들의 경쟁력 확보는 내수시장이 갖춰질 때 가능하지만 이번 방송위의 결정이 자칫 지방 소비자들의 디지털TV 구입에 혼란을 주어 내수 침체로 연결될 염려가 없지 않다. 뿐만아니라 산업계와 정부가 추진하는 T커머스, T정부 서비스도 차질을 빚는 등 여러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방송위의 결정에 대해 가전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기 불황과 내수 위축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전업계의 눈에는 이번 결정이 심상치않게 보일 것이다. 자칫 전체 디지털방송전환 일정연기로까지 이어질 경우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할 디지털TV 기술개발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휴대폰처럼, 디지털TV도 다른 나라보다 한 발 앞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디지털TV 보급 확산정책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전송방식을 놓고 입씨름만 하다가 세월만 다 보낼 것인가. 지금은 한가하게 논리를 앞세운 힘 겨루기를 할 때가 아니다. 경제를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도 집단의 논리에 흔들리지 말고 업계가 안심하고 투자하고 연구 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정책조율과 확고한 집행의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