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는 바꾸지 않아도 되는데 단말기는 왜 바꿔야 하는가.”
기존 전화번호를 그대로 간직한 채 통신 서비스 업체를 바꿀 수 있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미국에서 실시됐으나 가입 회사를 바꿀 때 대부분 휴대폰도 같이 교체해야 해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이동통신 업체들이 가입 당시 가입자들에게 싼 가격에 공급하는 단말기들은 다른 서비스 업체로 바꿨을 때는 사용할 수 없으며 번호이동을 신청하려면 비싼 단말기를 제값에 구입해야 한다. 게다가 현재 대부분의 미국 이통 가입자가 장기 계약에 묶여 있는 점까지 더해져 번호이동성 제도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C넷이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달 실시된 번호이동성 제도는 당초 기대했던 대규모 고객 이동 효과는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단체들은 이동통신 및 단말기 업체들이 단말기 호환 표준을 제정하도록 정부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CDMA와 GSM 방식은 호환되지 않는 점 △같은 방식의 이통 서비스라도 업체마다 사용 주파수 대역이 달라 호환이 불가능한 점 △화면 크기, 로밍 규정 등 기타 다른 업체의 네트워크에 적합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의 이유를 제시하며 소비자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이동통신 업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단말기에 별도의 잠금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왔다. 외국 업체들이 보조금을 받는 저렴한 단말기를 대량 구입해 해외에서 파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단말기에 잠금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는데 이는 서비스 업체를 바꿀 때 단말기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소비자 단체들은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동통신 업체간에 단말기를 호환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뉴욕주에서 제기된 반독점 소송은 “미국 주요 이동통신 업체들이 자사와 연결된 소수의 단말기 업체의 제품만 공급해 경쟁을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통 업체가 단말기에 잠금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자사 채널로만 마케팅을 하게 하는 것은 진입 장벽”이라며 이 소송에 집단 소송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단말기 유통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이통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단말기 교환 문제를 쉽게 양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IDC의 키스 웨리어스 애널리스트는 “이통 업체들은 단말기 유통 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단순한 망 공급자로 전락해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