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는 그럭 저럭 버텼는데 내년은 또 어찌 될런지….”
필자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올 한해의 성과와 내년도 사업에 대한 포부도 들을 겸해서 그간 투자한 업체를 방문하고 CEO들과의 면담을 갖곤 한다.
올해의 경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몇몇 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한결같이 내년도 걱정에 안색이 밝지 못한 것을 보면 중소기업들이 어렵다고 하는 얘기가 괜한 엄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통계를 통해 살펴 보면, 심각한 상황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나마 경영 기반이 양호하다고 할 수 있는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2003년 3분기 현재 등록된 기업 870여개중 280여개 이상이 금년도 적자가 예상된다. 이중 160여개의 기업은 2년 연속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등록기업 중 약18%에 해당하는 150여개 기업의 경우, 시장가격이 액면가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등록기업은 특단의 변수가 없는 한 금융권을 통한 여신은 불가능한 상태며, 그나마 등록 기업으로서 발행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을 고려할 수 있으나 침체된 시장분위기에서는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최근 수개월간 여러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시도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등록기업들의 상황이 이러하다면 여타 중소기업의 사정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지난 2∼3년전 광풍처럼 지나간 벤처 및 코스닥 열풍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좋은 아이디어에 열정이 더해지면 큰 부를 만들 수 있는 사례도 보여줬지만 많은 휴유증도 같이 남겨놓았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업계에 남겨진 일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것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국면 전환의 계기로 만들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때다.
영국의 처칠경은 “과거와 현재가 싸움질을 하면 미래가 손해를 본다”고 했다. 사실 그간의 국내 정치사를 살펴보면 처칠경의 이 경구가 너무나 실감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코스닥 및 벤처업계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관계부처 및 산하기관 그리고 업계는 그간의 공과를 따지는 일은 뒤로하고 내일을 생각하는 전향적인 협력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실례로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각 부처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눈앞에 만기가 도래하는 수조원의 기 발행된 프라이머리CBO의 해결방안을 보다 현실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사실상 자금지원을 받은 상당수의 기업이 원금의 상환능력을 상실한 상태며, 등록기업에 지원된 경우에도 주가 하락 등으로 만기에 출자전환할 경우 상당수의 기업이 대주주가 변동돼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부실이 현실화 될 경우 벤처업계는 또 한차례 큰 회오리를 맞게 될 것이다.
또한 벤처 및 코스닥의 할성화를 위해서는 인수합병(M&A)의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많은 정책을 내놓지만 의욕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의 가장 큰 이유로 아직 우리 경영자들의 인식이 시장의 필요치에 못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자세다. 필자가 M&A와 관련한 컨설팅을 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점은 아직도 경영자, 투자자들이 옛날 생각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회사가 이전에 몇 배수로 투자 받은 회사인데, 내가 몇배수로 투자한 회사인데’ 하는 등으로 말이다.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치도 달라지고 주변 시장상황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중소 벤처기업가는 그리 길지도 않은 옛날 생각에 내일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해를 보내면서, 어제를 발판으로 오늘을 지렛대삼아 내일로 도약하는 좋은 기업이 내년에도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홍철 한산홀딩스 대표이사 paul@hhcor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