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벤처는 벤처로 보아야 한다

 최근 소프트웨어 산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포상기업 중 대부분이 중소 벤처기업이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찼다.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제품을 만들어 낸 벤처들의 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우울해졌다. 벤처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지나치게 나빠졌고 벤처기업의 경영환경은 몹시 열악하다.

 몇 년전 벤처 붐에 줄을 서서 투자에 참여했던 엔젤 투자자는 원금회수가 안된다고 불만이고 벤처투자가 주업인 제도권 창투사에서는 단기간 내에 얼마의 매출이 확실시되는지, 심지어는 판매 계약서를 확인하고서야 투자를 검토한다.

 미국 같은 선진국의 경우 벤처부문에서 엔젤투자자의 투자부터 상품매출까지 단계별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벤처기업의 성공확률은 5% 이내지만 선진국의 벤처투자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투자한다. 성공확률은 낮지만 평균적으로 벤처캐피털의 투자수익률이 여타 투자 수익률 못지 않기에 지속적인 벤처자금 유입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벤처 붐을 조성, 최근 몇 년 동안 벤처기업의 저변이 확대되어 정보기술(IT)산업의 괄목할 성장이 이뤄졌다. 휴대폰, 반도체, PDP, LCD 등의 업종에서는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2000년이후 벤처 붐과 함께 인터넷상거래, 게임, 홈쇼핑 등 새로운 산업군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수년내 이들 벤처기업 가운데 세계를 풍미하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런 장미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로 돌아오면 중소 벤처기업에게 현재의 여건은 너무도 가혹하다. 얼마전 중국의 한 업체로부터 제안이 왔다. 우리가 하고 있는 IT분야의 개발과 제작업무를 그쪽 회사에서 하거나 중국으로 이전할 의사가 없는지 물어왔다.

 사업을 검토하기에 앞서 한동안 눈앞이 캄캄했다. 이런 제안을 하는 외국기업이 종종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업성 여부를 떠나, 제조업분야에서 대거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전하는 현실이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경쟁력이 있다는 IT분야까지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충격 때문이었다.

 국내 벤처기업인들은 동종업계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뿐 아니라 대기업과의 힘든 싸움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밤을 지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외국 기업과의 쉽지 않은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머리를 짜내야한다.

 국내 벤처기업에게 현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소 벤처기업이 제품을 만들어 내놓아 보았자 브랜드파워나 마케팅 능력 등이 대기업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 판로를 뚫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중소 벤처에서 만든 솔루션은 적정가치는 고사하고 인건비 정도 이하만 인정받는 것이 보통이다. 앞에 대기업을 세우지 않고는 들어갈 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동안 벤처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자금, 세제 등의 측면이 컸다면 이제 시장측면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다행히 최근에 정부가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를 육성하는 의미에서 일정규모 이하의 공공발주에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많이 다르겠지만 기본 원칙은 중소 벤처기업들이 자생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시장이 조성되는 것같아 다소 늦은 감이 있어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제 2의 빌게이츠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이 경기침체라는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투자자들이 벤처는 벤처로 보는 인식전환이 이뤄지고 정부의 정책적 배려로 적정한 시장이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어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벤처를 키우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시스윌 김연수 사장  yskim@sysw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