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 세계 IT기업들의 기술이 모이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의 IT 대기업들이 원가 절감과 신속한 상품 개발을 위해 대만에 연구개발(R&D) 거점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만이 세계 IT업계의 싱크 탱크로 급부상했다.
그동안 세계 IT산업에서 대만의 존재는 ‘대만이 중국에서 생산하고 이를 각 선진기업들에 OEM 공급하는’ 방식으로 대표돼 왔다. 이는 90년대 이후 세계 IT산업의 큰 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 대만은 더 이상 ‘OEM 왕국’이 아니다. 세계 IT기업들의 대만 러시 현상은 우수한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정부 차원의 유치에도 열성인 이 나라가 기업 활동의 적입지라는 인식에 힘입고 있다. 거의 모든 IT분야에서 톱 레벨의 R&D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투자 매력 중 하나다.
◇가자, 대만으로=인텔은 올 1월 타이베이시에 ‘인텔이노베이션센터’를 개설했다. 여기서 인텔은 대만의 OEM업체와 공동으로 미·일·유럽 PC업체들의 제품에 들어가는 CPU를 설계·개발하고 있다. 대만에 센터를 만든 배경은 원가 절감과 기간 단축에 있다.
델은 올 5월 타이베이시에 ‘델타이완디자인센터’를 설립했다. 약 130명의 현지 기술자를 채용했으며 장차 노트북 PC 및 개인휴대단말기(PDA)의 설계 부문도 미국 본사에서 이곳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소니와 휴렛패커드(HP)도 각각 4월과 9월 R&D 거점을 확보했으며 지난달에는 에릭슨이 3세대(3G) 휴대폰 기술 거점을 설치했다.
◇왜 대만인가=대만의 IT산업진흥단체인 자책공업책진회에 따르면 올 노트북 PC 세계 생산량 가운데 66.7%가 대만에서 생산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60.6%에서 6%포인트 정도 높아진 수치다. 이처럼 대만은 이미 IT산업의 세계 공장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생산과 기술이 접목될 때 시너지 효과는 크다는 단순 논리만으로도 세계의 대기업들이 대만에 눈을 돌리는 이유가 자명해진다.
대만 정부의 유치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대만은 중국으로 공장 등을 잇따라 이전하면서 산업 공동화 현상이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대만 정부는 세계 IT산업 공급망의 중심으로 살아남기 위한 범정부적 지원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개발 거점을 설립한 외국 기업에는 기술자들의 인건비를 보조하고 세금도 우대해 준다.
IT산업진흥을 담당하는 대만경제부기술소의 고위 관리는 “지난해 말 이후 11개에 달하는 외국기업이 대만에 R&D센터를 개설했다”며 “약 800명의 자국 기술자들을 지원하고 이에 따르는 인건비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크 탱크 기대감 높아져=지금까지 대만에서의 R&D는 간단한 제품 설계가 중심이었다. 고도의 기초 연구를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는 것이 해외 IT기업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인식이 바뀌고 있다. HP는 “대만에 R&D 센터를 개설한 이후 제품 개발의 효율은 높아진 반면 원가는 크게 낮아졌다”며 “이제부터는 핵심기술 개발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IBM이 향후 IT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유비쿼터스 기술 연구소를 개설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최근에 에릭슨이 대만에 R&D센터를 세운 목적이 3G 휴대폰 핵심기술의 개발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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