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먹거리 산업으로 자타가 공인해 온 이동전화 시장이 연초부터 ‘혼탁·과열·상호비방’으로 점철되고 있다. 번호이동성 시차제가 시작된 새해들어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최근 드러나는 모습은 신용대란을 몰고 왔던 신용카드 거리모집이나 지난 97년 PCS 3사가 출현했을때의 마케팅 경쟁보다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신규 가입 극대화를 위해 사업자들 가운데 계열사나 협력사 임직원들을 강제 동원하고 있거나, 이동전화 3사의 일부 대리점에서 공짜 단말기가 등장하고 있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들린다. 심지어 소비자들에게 번호이동 및 010통합번호의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사실상 무단 가입시킨다는 말까지 나온다. 급기야 시장감시기구인 통신위원회는 새 제도가 시행된지 불과 사흘만인 지난 3일 사업자들의 불법 마케팅 행위를 전격 조사하겠다고 밝혔고, 사업자들끼리도 서로 제소와 맞제소 등 극한 대립을 불사했다.
근본적으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업자 중심형’으로 굳어진 이동전화 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꼬집지 않을 수 없다. “각 대리점에서 번호이동 가입자를 많이 유치하면 엄청난 리베이트를 주는 것으로 안다. 본사 차원에서 대리점의 불법영업 행위를 단속하도록 요구하고, 전산시스템도 점차 안정된다지만 지금 문제는 대부분 영업현장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가입자 유치탓이다. 사실상 통제불능인 경우도 있다.” 서슬퍼런 규제당국인 정보통신부의 담당 공무원조차 고개를 흔들며 내뱉는 말이다.
적어도 말로는 공정경쟁과 게임의 룰을 강조하면서 번호이동성 시대를 맞아 소비자에게 ‘통신주권’을 돌려주자고는 하나, 지금 사업자들에겐 소비자와 법·정책·산업발전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분위기다. 대리점 현장에서 과열경쟁을 수수방관하고 상대방 흠집내기 전략을 구사하면서, 이동전화 시장전반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사회적 책임 또한 물타기를 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업자들의 불법혼탁 영업관행이 소비자의 통신주권 회복은 커녕 조만간 통신비용 가계부담 급증과 통신시장 성장엔진 상실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기만 하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